포털 검색창에 '김수영'을 쳤더니 기사가 무더기로 뜬다. '미디어 펜'이라는 데서 최근에 매우 열심히 써냈다. '김수영은 민중문학 희생양… 우상의 가면 벗겨야 할 때', '복면 시인 김수영과 패션좌파의 지적사기 전성기', '김수영의 시 '풀'이 '민중'의 가면을 쓰게 된 까닭은?', '백낙청ㆍ염무웅, 김수영 시 살해를 당장 멈춰라', '김수영ㆍ강신주 붐과 패션좌파의 '지적사기' 전성기', '저항의 시인 김수영?…좌파문단의 불온한 띄우기', '분노ㆍ양심의 시인? '김수영' 신화 만들기'…. 목덜미와 귀 뒤쪽을 긁적거리며 몇 줄 읽다 그만두었다. 재미없다. 제목은 거창한데 글에 박력이 없다.
시인 오세영이 한바탕 후려친 적이 있다. 그는 '계간 시학'의 2002년 가을호에서 임화, 김수영, 김광섭 등 현대 시인들의 작품을 비판했다. "현대시 비평이 지나치게 이념 중심으로 작품에 접근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프롤레타리아 시의 최고 전범으로 추켜세워진 임화의 '우리 오빠의 화로'는 문학적 유치함과 치졸성에 차라리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오세영은 김수영의 '풀'에 대해서는 '저급한 알레고리, 막연하고 불분명한 내적 감정, 비논리, 옹색한 상상력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에게는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도 저급한 정치시고 "이를 일급 시로 평가하는 것은 문단권력에 대한 아부이고 문단상업주의에 대한 영합"이었다.
이 글은 2005년에 '우상의 눈물'이라는 평론집에도 실렸다. 오세영은 책이 나올 즈음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강조했다. "'우리 오빠와 화로'는 사춘기 소녀의 감상적인 편지글 수준을 뛰어 넘지 못한 글이에요. 김수영의 '풀'도 수준 낮은 시적 상상력의 산물이에요." 2014년에도 같은 말을 했다. "김수영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일단 작품이 훌륭하지 않고, 둘째 참여시인이 아닌데도 참여시인이라고 주장을 하고, 셋째는 창비(창작과비평)그룹이 집단적으로 우상화한 것입니다. (중략) 김수영 씨가 1950년대 초에 시를 쓴 것은 일종의 아방가르드입니다. '공자의 생활난' 등은 뭐가 뭔지 모르고 쓴 것입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썼다'는 말을 나는 적어도 세 번 들었다. 김윤식, 이어령, 오세영에게서. 속으로 생각했다. "알았는지 몰랐는지 저희들이 어떻게 알아?“
자료를 뒤지다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시인협회가 2007년 10월 14일에 '한국의 10대 시인'을 선정했는데, 거기 김수영이 들어 있다. 김수영은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춘수, 이상, 윤동주, 박목월 등과 함께 이름이 올랐다. 대표작은 '진달래꽃', '님의 침묵', '동천', '유리창',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꽃을 위한 서시', '오감도', '또다른 고향', '나그네' 등이다. 김수영은 '풀'. 이때 한국시인협회장이 오세영이다. 오세영은 올해 6월에도 언론과 인터뷰하며 2002년과 다름없는 주장을 했다. 그가 14년이 지나서도 같은 주장을 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이시영이 쓴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었다. 책의 1부에 네 번째로 '김수영의 '꽃잎'에 대하여'가 실렸다. 부제는 '임홍배의 해석에 대한 짧은 반론'이다. 이시영은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많이는 아니고 조금'이라는, 시의 앞부분을 제시한 다음 말한다. "이 시의 새로움은 바로 이 '평범'의 발견에 있으며, 사람 아닌 다른 것에 문득 고개를 돌리는, 아니 고개를 숙이고 싶어 하는 시인의 만년의 삶에 대한 뜻밖의 경외를 읽어내는 데에 우리 시 읽기의 핵심이 놓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풀'이 나온다. "'풀'이야말로 우리의 손쉬운 해석을 거부하는 진짜 '무의미 시'인지도 모른다. 거기서 '풀'과 '바람'은 (중략) '크나큰 침묵'을 안은 채 '세계와 대지의 양극의 긴장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김수영을 다룬 글들 가운데 왜 장광설이 많은지 가끔 의아하다. 창비는 책을 3부로 나눠 편집했다. 나는 2부까지만 읽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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