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금융당국이 공모펀드 성과보수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자산운용사들의 고민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성과보수제는 펀드 수익률에 관계없이 0.6% 안팎의 운용보수를 떼어가는 기존 제도를 손질, 운용보수를 인하하고 목표수익률 달성 여부에 따라 성과를 차등 지급하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는 환매시기가 정해져 있고, 투자금액이 5억원 이상인 공모펀드만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당국은 이 제한을 없앴다. 운용사들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운용사 수익 기반 약화, 실효성 문제 등을 제기하며 난색을 표시하는 상황이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도입하기로 한 공모펀드 성과보수제와 관련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용사, 판매사 등 업계의 의견을 수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운용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수익 기반 약화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벤치마크(BM)인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는 허들은 높고, 지지부진한 국내 주식 시장은 절대수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할 수도 없는 시장"이라며 "성과보수를 받지 못하면 운용보수만 깎이게 되는 상황인데 결국은 운용사 보수만 낮아지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코스피가 3.21% 하락하는 동안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평균 8.74% 떨어졌다(20일 기준).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성과보수를 받지 못해 운용사의 수익 기반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게 대다수 운용사의 입장이다.
실효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목표수익률에 도달하기 직전에 투자자가 펀드를 환매할 경우, 성과보수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란 우려다. 예를 들어 목표수익률 5% 달성시 성과보수를 지급하기로 했는데 펀드 수익률이 4.9%에 도달할 때 투자자가 펀드를 환매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사모펀드의 경우 이런 이유로 프라이빗뱅커(PB)들이 투자자들에게 환매를 권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게 운용사 설명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심지어는 일부 기관들조차 사모펀드 가입시 성과보수를 지급하기 싫어 목표수익률에 도달하기 직전에 펀드를 환매하는 경우가 있다"며 "공모펀드에 성과보수제가 도입되면 같은 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형평성 문제도 논란거리다. 기존 운용중인 공모펀드에 성과보수제를 도입할 경우 기존 펀드 외에 성과보수형 클래스나 성과보수형 자(子)펀드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기존 펀드보다 운용보수를 낮게 책정하게 된다. 같은 펀드에 다른 운용보수를 적용하는 것은 기존 가입자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판매보수의 경우 어느 판매 채널에서 가입했느냐에 따라 이미 보수를 다르게 책정하고 있는 만큼 운용보수가 달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투자자 선택권 확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밖에도 투자자 개별 수익률을 계산하기 위한 전산망 구축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 적립식 또는 임의식 가입자가 투자금을 일부 환매할 경우 수익률 계산이 복잡해진다는 점 등이 문제로 거론된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ㆍ연금실장은 "공모펀드 성과보수제의 도입 취지는 긍정적이고 실제로 미국, 홍콩 등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다만 시장 수익률을 비트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처럼 운용사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공모펀드 성과보수제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이라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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