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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데이에 다시 보는, 클림트 '키스'자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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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의 현기증과 눈감은 자아의 황홀한 순간에 대한 예찬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늘(6월14일)은 '키스데이'라고 한다. 이런 날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런 날엔 뭘 해야 할지도 좀 난감한 사람들이 있을 법 하다. 클림트의 잘 알려진 작품 <키스>는 발 자세가 인상적이다. 여자의 발은 침대 끝에 발등을 걸고는 발가락 끝에 힘을 주면서 내면의 전율을 표현한다. 그림 속의 꽃들이 들판을 표현한 것인지, 침대 커버나 이불같은 장식물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여자의 발이 모서리에 걸려 있는 상황과, 그 뒤에는 벼랑같아 보이는 '황금 암흑'이 불안감을 살짝 돋운다. 포옹의 현기증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결코 자화상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나 자신이 그림의 소재로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내 관심을 끕니다. 나는 내가 특별히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특이한 점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회화로든 글로든 나의 자화상을 볼 수 없을 겁니다.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싶다면 내 그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서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면 될 겁니다."

키스데이에 다시 보는, 클림트 '키스'자세 분석 클림트의 작품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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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얼굴은 클림트의 이 말을 자꾸 떠오르게 한다. 눈을 감고 있는 저 표정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연이 있다. 키스를 할 때 눈을 감는 사람을 보았지만, 저렇게 영혼의 눈을 뜬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노라면, 클림트의 갈망이 떠오르고, 그가 다다른 신성에 가까운 평화와 만족이 느껴진다. 키스란, 얼마나 따뜻한 자애(自愛)인지 저 여인은 그 표정으로 다 보여준다.

클림트가 저런 얼굴을 모델로 선택한 건 우연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의 매력은 남녀가 걸치고 있는 의상의 무늬를 활용한 '명품'스런 장식이다. 그녀의 얼굴은 클림트의 그림이 지닌 화려하고 행복한 장식성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녀의 얼굴 자체가 장식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장식이 지닌 단조로움의 내재율, 그러나 그것이 서서히 고양시키는 미묘한 정서적 흥취. 게다가 뭔가 텅빈 것 같은 것의 불안한 아름다움, 바로 그 허영끼까지. 내가 알고 있는 여자의 이미지 명세서는, 그래서 클림트의 저 여자와 분리하기 어렵다.


남자의 목에 걸쳐진, 그리고 목을 감아쥔 남자의 손을 다시 잡고 있는, 여자의 흰 손은, 에로틱한 느낌이 클림트의 저 장식미에 대한 열정과 어떻게 살을 섞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체형을 알기 어려울 만큼 풍성하게 부푼 옷 위의 강렬한 프린트는, 그것이 옷의 무늬가 아니라 존재를 배열하는 하나의 염색체같은 느낌을 준다. 남자의 옷에 있는 희고 검은 길쭉한 무늬들과 중간중간에 달팽이관으로 돌아간 무늬, 작은 알갱이와 이쁜 원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파편들이 빛나는 여인의 옷의 무늬. 여인의 옷 위에 걸쳐진 덧옷 위에 번져나간 자잘한 물방울의 파문들. 그 모두는 황금빛 톤을 유지하면서, 퇴폐를 느끼게 하는 호사스런 감미(甘味)를 변주하고 있다.


천경자의 그림이, 장식성이 강하다고 말하지만, 클림트의 이 그림에 비하면 그건 양반이라 할 만하다. 이 그림은 널찍한 거실에 걸어놓고 바라보면 좋을 것이다. 인간을 매혹시키는 꿈의 무늬들이 카펫처럼 깔린, 그 그림에선, 키스도 하나의 파격적인 장식일 뿐이다. 남자가 고개를 굽힌 각도 만큼 고개를 젖힌 여자. 키스는 저 조응(照應)하는 각도의 아름다움이다. 어쩌면 저 함께 꺾은 각도의 긴장이, 황금빛 옷과 황금빛 허공 속 온갖 무늬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키스는 입술 부근의 문제 만은 아니다. 클림트는 키스를 통해, 인간의 생에서 가장 자기의 환희와 본능에 충실한 아름다운 한 때를 표현해낸 것인지 모른다. '키스데이'라는 날이 만들어진 것은, 클림트의 화의(畵意)와 같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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