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확충펀드안, '캐피털콜' 재원조달 방식 등 2009년과 닮은 꼴
도관은행 산은서 기은으로…금통위 의결사항 사전공지는 달라
금융리스크 전제 달았지만 양측 해석 엇갈릴땐 갈등 재연 가능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정현진 기자] 국책은행의 자본확충방안이 1개월여간의 논의 끝에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12조원(정부 현물 출자 1조원 포함)규모의 자금을 마련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고, 이를 재원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정부와 한은은 상황이 악화돼 금융시스템 붕괴의 조짐이 보일 경우 한은이 직접출자에 나설 수 있음을 배제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9년 자본확충펀드 어게인…한은 금통위 의결은 차후로= 정부와 한은이 마련한 '2016년판 자본확충펀드안'은 2009년 조성됐던 은행 자본확충펀드와 닮은 꼴이다. 하지만 실제 운용하는 과정에서 대출을 경유하는 도관은행(한은의 돈이 흘러들어가는 파이프 역할을 하는 은행)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의결 시기 등에 일부 차이를 보인다.
자본확충펀드의 전체 골격은 2009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은이 도관은행에 대출하면 도관은행이 이 재원을 운용해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게 된다.
운용 구조에서 2009년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도관은행이다. 2009년 당시에는 산업은행이 도관은행이 돼 한은에 직접 대출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산은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이번 도관은행 역할은 기업은행이 맡아 특수목적회사(SPC)에 재원을 재대출, SPC가 조성한 펀드가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을 인수해 국책은행 자본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한은의 대출 규모와 운영방식은 2009년과 동일하다. 이번 자본확충펀드에 한은이 대출하는 한도는 2009년과 같은 10조원이다. 당시 펀드 조성 전체 규모는 20조원이었지만 산은(2조원)과 기관 및 일반투자자(8조원)의 재원도 포함돼 마련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도관은행인 기업은행이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후순위대출 형태로 1조원의 재원을 조성하는 데 참여하게 된다.
운영방식은 국책은행 자본 수요에 맞춰 재원을 조달하는 '캐피탈 콜(capital call)' 방식이다. 캐피탈콜은 전체 한도액, 즉 규모를 설정해둔 상태에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한도 내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될 경우 총 한도를 모두 사용하기보다는 이 중 일부만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2009년에도 실제 집행된 금액은 3조9000억원 가량이었다.
한은의 의사결정 절차도 2009년과는 다르다. 7년 전에는 한은의 대출규모가 금융위원회를 통해 발표된 당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를 의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통위 의결을 거치기 이전에 전체 규모(10조원 이내)와 대출 기간(2017년 말까지 펀드 운영) 등을 미리 발표했다.
◆직접출자 길 텄지만 논란 여전= 최후의 보루로 명시한 한은의 직접출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정부와 한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질 경우 한은의 수은 직접 출자를 포함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하기로 했다. 비록 '금융시스템 불안'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한은의 직접 출자의 길을 텄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한은은 그동안 직접 출자를 통한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대해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중앙은행의 손실 최소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날 나온 자료에 '한은의 수은 출자시 정부는 동 출자지분을 조기에 양수하도록 노력'하겠다는 표현을 넣은 것도 손실 최소화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는 게 한은 측 설명이다.
반면 정부는 구조조정이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광의의 가치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신속히 구조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결국 한달여간의 논의 끝 양측은 최악의 상황인 '금융시스템 불안'이란 단서를 다는 선에서 한은이 직접 출자를 수용하는 안을 마련했다. 한은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경우 최종대부자 기능을 하겠다는 선언적 의미에서, 정부는 한은의 직접출자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의미에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전제조건인 '금융시스템 불안'에 대한 양측의 해석이 엇갈릴 경우 직접출자를 놓고 또 다시 격돌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경우 수은 출자를 검토한다는 내용은 선언적 의미"라며 "향후에도 한은이 직접 출자하는 상황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