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동부가 어려워지더라도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해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30년 '반도체 고집'이 마침내 통했다. 그룹의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던 동부하이텍은 어닝 서프라이즈로 화답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의 염원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올해 1분기 동부하이텍은 매출 1839억원, 영업이익 407억원, 순이익 27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22.1%에 달한다. 전년 동기 12.6%, 전 분기 16.6% 대비 급상승했다. 향후 실적도 꾸준한 상승세가 기대된다.
동부하이텍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이 호황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오디오칩, 디스플레이 구동 드라이버, 터치스크린 제어칩 등이 주력 제품이다. 일반 아날로그 반도체 대비 부가가치가 높고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동부하이텍 뿐만 아니라 가전사업을 담당하는 동부대우전자가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LED 조명 업체 동부라이텍, IT 사업을 담당하는 ㈜동부 등 전자계열사 전부가 안정적인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과거 행적은 가시밭길이었다.
2013년 시작된 그룹 구조조정이 분수령이었다. 김 회장은 제조 계열사 대부분을 매각하며 동부화재를 중심으로 한 금융부문, 동부하이텍을 중심으로 한 전자부문으로 그룹을 재편했다. 비슷한 시기 구조조정에 나섰던 현대그룹, 한진그룹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력사업 위주의 과감한 투자, 오너의 신뢰가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돌이켜보면 김 회장은 1983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이후 거듭된 악재에도 동부하이텍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투자비가 들어가는 등 그룹내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동부화재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동부하이텍에 지원하고 채권단의 동부하이텍 매각을 막기 위해 사재를 출연하는 승부수도 던졌다.
동부하이텍은 지금도 매물로 나와 있지만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내부의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매각 대신 독자생존을 시키는 것이 낫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김 회장의 오랜 숙원인 '종합전자 회사'로서의 꿈도 한발 다가서고 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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