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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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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처님 오신 날, 불교 영화를 말하다
달라이 라마에 초점 맞춘 서양과 달리 한국 영화들은 고찰·깨달음 과정 담아
1980년대 이후엔 인간적 시각에 집중 '달마가 동쪽으로...' 등 해외 수상도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만다라'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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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싯다르타의 가르침은 헤아릴 수 없다. 8만4000개에 이른다는 인간의 번뇌에 빠짐없이 대응한다. 이 법문을 관통하는 진리는 크게 네 가지다. 모든 합성된 것은 덧없고, 모든 감정은 고통이고, 모든 것에는 본래의 실체가 없고, 열반은 개념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고난을 이기고 불심에 이르는 과정은 싯다르타가 수행과 공덕으로 도를 깨닫고 부처가 되는 과정과 닮았다. 한국 불교 영화는 이 고찰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마음의 고향' 스틸 컷


불교를 소재로 한 첫 한국영화는 윤용규의 '마음의 고향(1949년)'이다.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모성에 목말라하는 동승의 갈등과 번뇌를 다룬다. 고즈넉한 사찰의 풍경과 함께 애틋한 이야기를 한 편의 시처럼 서정적으로 그려 오늘날까지도 수작으로 꼽힌다. 동승을 양자로 삼으려는 미망인을 연기한 배우 최은희는 단아하고 고전적 이미지로 당시 한국적 여인상의 표본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불교영화는 세계 영화계에 한국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광수의 동명원작을 실은 신상옥의 '꿈(1955년)'과 강노향의 동명원작을 그린 양주남의 '종각(1958년)'이 그랬다. 오묘한 세계관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각각 베니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됐다.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석가모니' 스틸 컷


모든 작품이 찬사를 받지는 않았다. 윤봉춘의 '성불사(1952년)'는 징병을 기피한 주인공이 절에 숨어 지내다가 주지 스님의 설법에 잘못을 뉘우치고 자진 입대한다는 내용을 그려 계몽영화로 분류됐다. 이렇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는 홍성기의 '에밀레종(1961년)', 장일호의 '원효대사(1962년)' 등으로 이어져 1970년대까지 매년 한 편씩 발표됐다. 한국적인 불교영화의 전형이 된 작품들도 있었다. 장일호의 '석가모니(1964년)'가 대표적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진한 가족애를 유도해 새로운 신파의 틀을 알렸다.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파계' 스틸 컷


이런 서술을 거부한 작품이 1974년 등장한다. 김기영의 '파계'다. 올깎이(어린 나이에 승려가 된 사람)와 늦깎이(많은 나이에 승려가 된 사람) 사이에 법통 계승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을 다룬다. 줄거리만 보면 욕망과 계율의 대립구조를 취하는 '파계 모티브'의 작품으로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선불교를 다룬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김호성 교수(56)는 "불교는 이름을 거짓이라 말한다. 가명이므로, 우리는 그 이름에 속을 수 없다. 침해와 묘혼의 파계를 괄호 속에 넣게 되면, 이 영화가 계(戒)에 관한 영화가 아님을 알게 된다. 정(定)과 혜(慧)에 관한 선(禪)을 문제 감고 있는 작품이다"라고 했다. 그는 "올깎이와 늦깎이의 대립,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모든 승들이 갖고 있었던 법통에 대한 강력한 소유욕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줌으로서, 법통 추구의 본질이 권력에의 의지이며, 권력에의 욕망임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스틸 컷


불교영화는 1980년대 들어 그 수가 크게 준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인간적 시각에 초점을 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해 많은 관심을 얻었다. 임권택(80)의 '만다라(1981년)'ㆍ'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년)', 배용균(65)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년)' 등이다. 배우 강수연(50)의 삭발 투혼으로 화제를 모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불교적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는 수행적 삶의 사회적 의미를 무난하게 영상화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불교의 선사상을 동양사상에 묶어 함축적으로 풀어내며 불교적 사유의 이미지화를 제시했다. 이 영화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달마야 놀자' 스틸 컷


불교영화로 가장 흥행한 작품은 박철관의 '달마야 놀자(2001년)'다. 서울에서만 관객 125만3075명을 동원했다. 영화는 얼핏 당시 유행하던 조폭영화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교수는 "조폭들이 절을 도피처로 삼으면서 감화(感化)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힐링보다 더 중요한 정화"라고 했다. 그는 "힐링은 심리를 건드리는데 그치지만 정화는 윤리까지 치료한다. 힐링과 달리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만 계속된 반성과 성찰로 상처를 치유하고 근본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리틀 부다' 포스터


미국과 서구권에서 그리는 불교영화는 한국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관심이 비폭력 평화를 주장하는 달라이 라마에 맞춰져 있다. 불심에 이르는 과정보다 신비로움이나 환생, 독특함에 주목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75)의 '리틀 부다(1993년)'가 대표적이다. 열반한 라마 도제의 환생한 계승자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자칫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는 소재지만 환생한 계승자를 세 명으로 설정하고, 미국아이나 여자아이로도 환생이 가능하다는 흥미로운 화두를 던진다. 불교를 온전하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탄생, 고딕성당 등을 끌어와 불교와 비교하며 기독교적 상상에 갇히는 한계도 드러낸다. 싯다르타가 물에 비친 자신의 허상과 대결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으로 비판을 받았다.


인간의 번뇌와 욕망, 스크린의 참회록 불교영화 '컵' 스틸 컷


이밖에 마틴 스코시즈(74)의 '쿤둔(1997년)', 장 자크 아노(73)의 '티벳에서의 7년(1997년)', 모리시타 코조(68)의 '붓다: 싯다르타 왕자의 모험(2011년)', 비탈리 만스키(53)의 '선라이즈 선셋(2008년)' 등도 짚고 가야 할 영화다. 부탄에서 티베트불교의 영적 스승으로 추앙받는 종사르 잠양 켄체(55)의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컵(1999년)', '나그네와 마술사(2002년)' 등이다. 리틀 부다에서 고문을 맡으면서 영화에 입문해 카메라를 불교의 진리를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 활용하고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영화의 고찰과 맞닿아 있다. "불교인이 되려면 모든 합성된 것은 덧없고, 모든 감정은 고통이고, 모든 것에는 본래의 실체가 없고, 열반은 개념을 초월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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