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유토피아, 비밀을 품은 그 섬 울릉도-하늘을 걷는지 바다를 달리는지 35km 천혜의 해안길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봄빛이 무르익어 갑니다. 울긋불긋 봄의 색깔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신록으로 덧칠합니다. 물빛과 산빛, 하늘빛이 하나가 되어 봄날의 수채화를 그려냅니다. 바다는 색깔부터 다릅니다. 파란색도 아니고 옥빛과 쪽빛과 남청색이 기묘하게 어울린 빛깔의 그 바다입니다. 고기잡이 나선 배를 기다리는 갈매기들의 꾸악거리는 울음소리가 정겹습니다. 울끈불끈 치솟은 암벽과 뾰족바위들이 해안을 호위하고 서 있습니다. 한 굽이 돌때마다 바위들이 겹쳐지고 드러나며 새로운 바다 풍경이 펼쳐집니다. 푸르름을 더해가는 들녘엔 아낙들의 봄나물 수확이 한창입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울렁울렁 뛰는 신비한 섬 울릉도의 5월은 이렇듯 아름답고 환상적입니다. 아직 알려진 것보다 숨겨진 매력이 더 많은 곳. 울릉도의 속살을 보기 위해 배에 올랐습니다.
동해의 거친 물살이 쉽게 외지인을 허락하지 않는다. 배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멀미 때문에 신고식을 톡톡히 치러낸다. "울릉도다 울릉도"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소리에 신고식을 치르던 사람들의 눈빛도 달라진다. 출렁거리는 시야 너머로 해무에 덮인 신비의 섬이 불쑥 솟아오른다.
강원도 강릉여객선터미널을 떠난 배는 험한 바닷길을 3시간여 달려 울릉도 저동항에 닿았다. 쪽빛 바다와 맑고 차디찬 물살, 코끝을 자극하는 바다내음, 오징어잡이배를 따라 나선 갈매들까지 울릉도와 첫 만남은 뭍과 사뭇 다르다.
울릉도에 온 이상, 울릉도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울릉도라는 섬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느긋하게 해안도로를 달리거나 트레킹을 즐기는 것이다. 걷는 도중 물안개가 걷히고 독도를 보는 뜻밖의 선물을 얻기도 한다.
◇행남등대 해안길-쪽빛, 연두빛, 먹빛 길마다 변하는 바다 장관
도동∼행남등대∼저동 해안산책로는 환상의 길로 꼽힌다. 울릉도 관문인 도동항이나 저동항에서 시작하기에 접근성도 좋다. 솟아오른 용암과 오랜 세월 파도와 비바람이 빚어놓은 신비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다와 섬이 만나는 해안 갯바위 가장자리로 아슬아슬 이어지는 오솔길은 장관이다.
도동항에서 길을 나선다. 해안 절벽길 초입, 절벽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파도에 할퀴어 팬 자국이다.
길은 절벽 사이 암굴로 들어갔다가 다시 벼랑을 탄다. 물빛도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에메랄드빛이라고 하는 바다빛을 볼 수 있고 먹물이 짙게 밴 검푸른 바다도 보인다.
해안길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아름드리 곰솔과 털머위 군락지가 사계절 반긴다. 행남등대 전망대 북쪽 앞바다에는 울릉도 부속섬 죽도와 관음도가 저만치 보인다.
등대를 나와 저동항 쪽으로 가면 벼랑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절벽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는 수직 나선형 달팽이 계단(높이 57m)이 압권이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안전은 큰 걱정 안 해도 된다.
저동마을 촛대바위까지 해안 산책로가 이어진다. 현무암이 어우러진 이 산책로엔 구름다리와 터널, 전망대, 몽돌해안이 있어 걷는길로는 부족함이 없다.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대풍감 태하등대길-한국의 10대 비경과 눈을 마추다
울릉도의 걷는길 중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태하리는 옛 우산국의 도읍지다.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이듬해인 1883년 54명의 개척민이 첫 발을 내디뎠던 곳이다. 지금도 100여년의 세월을 견딘 집에 사람들이 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산길 초입에서 등대까지 40~50분이면 닿는다. 오르는 길 내내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지천이고 때때로 바다가 옥빛을 뽐내 발걸음이 상쾌하다.
쉽게 가는 방법도 있다. 모노레일을 타는 것이다. 총연장 304m로 최대 각도 39도나 되는 가파른 경사를 6분 동안 올라간다. 20인승 카 2대가 레일을 타고 기암과 숲으로 이루어진 산을 오르면 마치 암벽등반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산정에 내려 10분 남짓 걸으면 탁 트인 해안 전망을 만난다. 한국의 10대 비경 중 하나인 대풍감(待風坎) 절벽이다. 대풍감은 먼 옛날 돛단배타고 이 섬에 온 뱃사람들이 출항할 때 바람을 기다리던 자리라 해서 이름지어졌다.
바라만봐도 아찔한 절벽은 제멋대로 뒤틀리고 구부러진 울릉도 향나무의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9호)다. 암벽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가팔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바다의 물빛이 가장 아름답다. 옥빛과 쪽빛과 남청색이 기묘하게 어울린 빛깔이다. 바다위로 부셔지는 햇살 때문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사라져 버린다.
대풍감에 서면 멀리 현포항, 송곳봉(430m), 바다 위의 코끼리바위(공암) 등이 펼쳐놓은 기암괴석의 풍경이 장관이다. 등대까지 오르며 흘렸던 땀의 수고로움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전망대는 해넘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빨갛게 물들이며 수평선과 입맞춤하는 태양이 환상적이다.
◇내려다본 쪽빛 바다와 천부마을 둘레길
천부마을에 둘레길이 있다. 관광객에겐 아직 덜 알려진 짤막한 산길이다. 1.5㎞가 채 안 되는 길이지만 탁 트인 해안 전망과 솔잎 깔린 오솔길, 삼나무숲을 갖춘 알찬 산책로다. 해안도로 여행길에 짬을 내 거닐어볼 만하다.
산비탈에 설치된 나무계단은 가파르지만 10분쯤 오르면 곧바로 천부 전망대다. 송곳봉과 그 앞바다에 뜬 공암 그리고 천부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전망은 좋지만 전깃줄이 풍경화를 갈라놓아 아쉽다.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솔잎으로 푹신한 길바닥이 자주 환해진다. 붉은 동백꽃 꽃송이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산비탈 부지깽이밭ㆍ삼나물밭에도 푸릇푸릇 봄기운이 뚜렷하다. 길섶엔 아기 손톱보다도 작은 새별꽃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남양리 해안에도 명물 산책로가 있다. 하늘과 구름, 그 푸르던 바닷물조차 붉게 물들게 하는 남서일몰전망대다. 자식을 염원하는 이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었다는 남근석과 바위에 부딪혀 사라지는 파도가 투명한 난간 너머로 비친다. 사태구미 해안변에 병풍처럼 펼쳐진 단애절벽과 기암괴석 그리고 넓은 수평선을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해안드라이브-석포전망대에 서면 무릉도원이 눈앞에…
울릉도의 신(新) 여행문화가 자유여행이다. 아직 보편적인 여행법은 아니다. 여전히 여행사 단체 버스 투어나 택시를 대절한다. 그러나 렌터카 여행족도 늘어났다. 더 자유롭게, 더 다양하게 울릉도를 보고 싶은 여행자의 바람의 결과다.
드라이브에 좋은 곳은 해안도로다. 경사가 완만하고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릴 수 있다. 해안 일주도로는 아직 완공 전이다. 도동항을 출발점으로 시계방향으로 사동∼천부를 지나 섬목선착장까지만 연결돼 있다. 반대방향으로는 저동을 거쳐 내수전까지다. 섬목에서 저동까지 4.4㎞는 길이 없다.
도동항에서 해안길을 따라가면 여기저기 기암괴석이 얼굴을 내민다. 울릉도에서 하나뿐인 교통신호등이 달린 터널을 지나면 남양몽돌해변이다. 바닷물에 닳고 닳아 둥글둥글해진 작은 자갈돌이 앙증맞다.
태하에서 현포령을 넘어가는 해안도로는 한적하고 운치 있다. 현포령을 넘자 시야가 트이면서 현포항과 북면 일대의 해안 절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북면 해안은 비경의 연속이다. 우산국 시절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현포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신기하게 생긴 공암이 조금씩 코끼리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천부에서 섬목으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삼선암, 관음도(깍새섬)가 차례로 절경을 드러낸다. 울릉도 3대 비경 중 제1경으로도 꼽히는 삼선암은 멀리서 보면 2개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3개로 되어 있다. 여기서 관음도는 지척이다. 관음도는 죽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옛날 해적들의 소굴이었다는 관음쌍굴이 자리해 있다.
섬목에서 되돌아 나온다. 산길을 달려 석포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자유여행이 아니면 가기 힘든 곳이다. 예전부터 망루역활을 하던 곳이다. 러일 전쟁당시 일본이 러시아 군함을 관측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했다. 송곳봉과 북면 해안도로가 한눈에 들어오고 울릉 3대 배경인 관음도와 죽도가 지척이다.
안개가 송곳봉에 걸리자 첩첩이 연결된 산을 뒤로 하고 태양이 수평선에 가까워진다. 붉은 빛이 바다를 물들인다. 송곳봉과 바다는 한마디로 무릉도원, 절경이 따로 없다. 울릉도를 찾아 이런 풍광을 맛보는 여행객이 몇이나 될까 싶다. 자유여행이 주는 진정한 자유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울릉도(경북)=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울릉도 여행길은 최근 2~3년 사이 한결 수월해졌다. 결항이 잦은 한겨울과 달리 봄철엔 배편이 강원도 강릉항ㆍ동해 묵호항ㆍ경북 포항항 등으로 다양하다. 각 항구에서 씨스타호ㆍ썬플라워호 등이 매일 운항. 강릉항에서 울릉도 저동항은 178㎞로 3시간은 족히 걸린다. 강릉항에는 무료로 차량 200여대를 주차할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강릉∼울릉 5만4000원(강릉 출발) 5만5500원(울릉 출발). 일반석 어른 편도. 강릉여객선터미널(1577-8665) 울릉여객선터미널 (054-791-0801~3), 저동항 터미널 (054-791-9330).
△볼거리=독도, 나리분지, 내수전 옛길, 몽돌해변, 봉래폭포, 독도전망대, 울릉 둘레길, 성인봉 등이 있다. 군내버스가 섬내 주요 마을과 관광지를 연결한다. 버스시간만 잘 맞추면 자가용처럼 이용할 수도 있다. 버스시간표는 도동항 관광안내소에서 받아볼 수 있다. 섬일주는 관광버스나 택시(5만~15만원)를 이용한다. 렌터가는 승용차 1일기준 6만원~12만원선. 울릉도 패키지여행은 한국드림관광(http://www.koreadreamtour.co.kr/main/main.phpㆍ 1577-8121)이 울릉도 여행을 처음시작한 곳으로 다양한 상품이 있다. 왕복 선박요금, 숙박, 섬 일주 버스관광, 식사 등을 포함해 2박 3일 1인 기준 20만∼50만원선이지만 숙소와 음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먹거리=따개비로 육수를 내고 감자ㆍ양파ㆍ호박을 넣고 끓인 따개비칼국수와 참기름ㆍ진간장을 넣고 지은 따개비밥이 유명하다. 오징어 살을 얇게 썰어 넣고 상추ㆍ당근ㆍ양파를 곁들인 오징어물회도 별미다. 싱싱회센타와 저동 천금회센타가 이름났다. 보배식당(054-791-2683)의 홍합밥을 잘 한다. 약초를 먹고 자란다는 울릉 약소도 빼놓을 수 없다. 저동활어 판매장은 현지인의 사랑방 같은 곳. 참문어, 닭새우 등 해산물이 넘쳐난다.
△잠자리=울릉읍 사동에 있는 호텔 울릉드림(054-791-0081)은 풍경이 탁월하다. 대아리조트(054-791-8800)와 깨끗한 펜션들도 여럿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