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어화'에서 호흡 맞춘 동갑내기 한효주와 천우희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최근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드물다. 여성 중심의 시나리오도 적지만 흥행을 보장하는 인재풀이 얕다. 한효주와 천우희는 그래서 놀랍다. 좁은 틈을 비집고 올라 기어코 주류에 합류했다. 2014년부터 매년 두 작품 이상 주연으로 참여한다. 흥행과 호평도 얻었다. 한효주의 '쎄시봉(2015년)', '뷰티 인사이드(2015년)'는 각각 관객 171만4803명과 205만4297명을 동원했다. 천우희는 '한공주(2013년)'로 이듬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13관왕을 했다. 주연으로 참여한 '곡성'은 다음 달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두 배우를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물아홉 동갑내기여서일까. 비슷한 구석이 많다. 간단한 질문에도 한참을 고민하고, 어렵게 입술을 뗄 때는 초롱초롱한 눈을 한껏 크게 뜬다. 눈싸움을 거는 듯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작품의 내용보다 색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계속 부딪히고 극적으로 치닫는 연기요. 저에게는 도전이었죠(한효주)." "서로 천재성을 갈망하며 팽팽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힘의 균형이 뚜렷하게 드러나길 바랐어요. 그런데 감독이 원하는 방향은 달랐고, 받아들여야 했죠(천우희)."
두 배우가 출연한 '해어화'는 1940년대 경성에서 전통 성악곡 정가(正歌)의 명인인 소율과 신식 가요에 꼭 맞는 목소리를 가진 연희가 사랑과 노래를 두고 마음을 겨루는 영화다. 한효주는 소율, 천우희는 연희를 연기했다. 박흥식 감독(51)은 두 배우의 새로운 매력을 담는데 주력했다. 청순하고 발랄한 이미지의 한효주에게서 차갑고 도발적인 면을 끌어냈고, 어둡고 센 역할을 주로 맡았던 천우희를 사랑스럽게 그렸다. 그래서 두 인물의 에너지가 부딪히는 느낌은 약하다. 특히 연희가 소율에 비해 입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갈등 해소의 열쇠가 멜로에 던져지고, 당시 시대상이나 새로움에 대한 열망도 생략돼 이야기는 평면적으로 흐른다.
"모든 도전이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인 거죠.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저의 20대 마지막을 온전히 이 영화에 쏟았거든요(한효주)." "이전까지 단벌옷에 화장도 없이 연기했잖아요. 다양한 옷을 입고 예쁘게 찍혀서 즐거웠어요. 배우로서는 시나리오에 생략된 연희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려고 많이 고민했어요. 의도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도 인물이 느끼는 고민을 가진 채로 배역에 몰두하면 감정이 자연스레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죠. 이명과 탈모까지 왔지만 분명 뜻 깊은 작업이었어요(천우희)."
두 배우가 충무로에서 계속 러브콜을 받는 원동력은 이 경험에 있다. 실패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곱씹고 복기하며 연기관을 다듬는다. "처음 방송국을 찾은 게 열아홉 살 때에요.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시트콤 '논스톱5(2004년)'를 찍으면서 계속 NG를 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어요. 답답한 마음에 화장실에 숨어 엄청 울었어요.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2007년)'을 찍으면서 연기에 조금 눈을 뜬 것 같아요. 165부작에 참여하면서 캐릭터가 무엇인지,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게 됐죠. 그러면서 경험의 중요성도 느끼게 됐고요(한효주)." "봉준호 감독(47)의 '마더(2009년)'를 촬영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어요. 시나리오 한두 장에 나오는 배역이었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책임감도 키웠고요. 자질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우고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쳤죠(천우희)."
천우희가 그동안 그린 인물들은 대체로 강하다. '써니(2011년)'에서 본드를 마시는 '일진언니' 상미, '한공주'에서 집단성폭행을 당하는 한공주, '손님(2015년)'에서 과부이자 강압에 못 이겨 무당이 되는 미숙 등이다. 천우희는 "자꾸 센 역할을 연기하면 대중에게 그렇게 각인될 수 있다. 이제는 주위에서 더 우려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지 변신을 시도할 계획은 없다. "이걸 자꾸 신경 쓰다 보면 선택의 폭이 좁아져요. 도전할 수 있는 역할에 제한이 생기는 거죠. 솔직히 센 역할을 계속 맡아도 상관없어요.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는 배우의 길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술이란 것이 본래 새로움을 선도하는 것 아닌가요. 기존 배우들과 다른 노선을 걸어서 나만의 색깔을 내는 게 목표에요."
남부러울 것 없을 듯한 그녀에게도 탐나는 것은 있다.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된 한효주의 의연함과 외모다. "효주가 왜 잘 나가는지 '해어화'를 함께 하며 알게 됐어요.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의지가 굳어요. 얼굴도 그림처럼 아름답고요. '참 예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나요." 한효주에게 천우희는 배울 점이 많은 배우다. "단점을 찾을 수가 없어요. '한공주'를 봤을 때부터 무서운 배우라는 걸 알았죠. 정말 연기를 잘하지 않나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예요. 서로 응원하며 롱런하고 싶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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