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권잠룡 총선 성적표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민심이 준엄하게 심판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여야의 잠재적인 대권주자들의 정치적 명운도 갈랐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1년8개월 앞두고 치러진 이번 총선은 여야 잠룡들의 정치적 리더십을 테스트하는 1차 관문인 만큼 총선 성적표에 따라 차기 대권 기상도가 크게 변화되는 양상이다.
◆비상(飛上) = '적진 출마'에서 이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당선자는 이번 총선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김 당선자는 여권의 정치적 심장인 대구에 파란 깃발을 꽂으며 단숨에 야권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김 당선자가 승리한 대구 수성갑은 우리나라 보수 1번지로 꼽히는 지역이다. 그 만큼 지역주의가 강하다는 이야기다. 수도권에서 이미 3선을 지낸 김 당선자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새누리당 철옹성을 허물면서 전국적인 입지까지 다져놨다. 차기 대권구도에서 비친노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완의 삼룡(三龍) = 야권의 유력한 대권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안 대표는 이번 총선 직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창당한 국민의당이 당초 예상을 깨고 38석을 달성하면서 야권의 대선주자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을 수성하며 여의도 재입성에 성공, 야권 잠룡 가운데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전승을 거두고 수도권에선 2석에 그친 만큼 '지역정당의 당수'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문 전 대표도 부산과 경남에서 더민주가 역대 최대 의석(8석)을 얻으면서 체면을 세웠다. 하지만 더민주는 정치적 기반인 호남에서 참패, '반문재인' 표심을 확인했다. 문 전 대표가 총선 공식선거운동 기간 반대를 무릅쓰고 호남 방문을 강행한 결과라는 책임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당시 문 전 대표는 호남의 선거 결과에 따라 대선 불출마를 공언한 만큼 향후 거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다.
여권 잠룡인 유승민 무소속 당선자는 '신호대기'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혀 광야로 쫓겨났던 유 당선자는 대구 동을에서 4선에 성공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측근들이 이번 총선에서 대거 낙선하고 '나 홀로 생환'한 탓에 유 당선자의 '백색돌풍'은 미풍에 그쳤다. 새누리당에 복당한다고 해도 수족을 잃은 만큼 당내 입지는 좁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의석으로 참패한 점은 역으로 그에게 기사회생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권의 잠룡들이 줄줄이 이번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향후 대선정국에서 '따듯한 보수'를 주장한 유 당선자가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남았다.
◆승천(昇天)불발 = 자타공인 여권의 대권주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치명타를 입었다. 김 대표가 사령탑을 맡은 총선에서의 참패도 뼈아프지만, 김 대표의 정치기반인 부산이 무너진 탓이다. 부산은 18개 선거구 가운데 5석이나 더민주에 빼았겼다. 김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중구영도에서도 더민주 김비오 후보가 40.7%의 득표율로 선전하며 체면을 구겼다.
김 대표 측에선 새누리당의 패배 원인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비롯한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파동으로 돌리지만, 친박계에선 '옥새파동'으로 당내 갈등을 대대적으로 알린 김 대표에게 십자포화를 쏟고있다. 김 대표는 14일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향후 여권의 권력재편 과정에서 김 대표 정치적 명운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이번 총선에서 '날개 없이' 추락했다. 역대 대통령의 필수코스인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더민주 중진 정세균 당선자에 가로막혀 대권의 꿈도 멀어졌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더 치명적이다. 당 텃밭인 대구 수성을에서 더민주 김부겸 당선자에게 금뱃지를 넘겼다. 더욱이 차명진(경기 부천소사)·안병도(경기 부천오정) 후보 등 측근들이 김 전 지사의 정치기반인 경기도에서 고배를 마셨다.
한편 여권에선 유력 잠룡들이 줄줄이 흠집나면서 반기문 유엔(UN)사무총장과 남경필 경기지시, 원희룡 제주지사 등 불펜진이 대안론으로 떠오른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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