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모 연금의 부동산 투자 담당자한테서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부동산 투자시장에서 힘의 서열이 재편됐는데 임차인, 임차중개인 그리고 투자자 순"이라는 얘기다. 특히 업무용 건물에 투자한 경우, 임차인 모시기가 고3 수험생 모시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임차인이 건물을 옮기겠다고 하면 각종 혜택을 줘 붙잡아야 할 정도다. 일단 건물에 공실이 발생하면 다시 채우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서울의 공실률은 10%대로 5년 전보다 3배 정도 올랐다. 덩달아 임차중개인의 몸값도 뛰었다. 이들이 가진 임차인 정보는 수년 전에 비해 몇 배의 가치를 가진다. '투자자의 잠 못 드는 밤'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투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노후준비를 위한 재테크 수단 중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그 결과 2013년 말 기준 가계자산의 구성이 미국, 일본 등은 금융상품이 60~70%를 차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67.8%가 부동산이다. 아파트 등에 대한 직접투자로 재산증식과 노후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런 투자방식이 앞으로도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계속 줄고 있다. 투자방식이 직접투자에서 간접투자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대표적인 간접투자상품인 부동산펀드는 그 규모가 지난 10년간 2조5000억원에서 35조원으로 14배가량 성장했다. 최근 5년만 봐도 2.5배나 커졌다. 같은 기간에 주식, 채권을 포함한 전체 펀드시장 규모가 각각 2.1배, 1.3배 늘어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바야흐로 부동산간접투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부동산간접투자시장의 빠른 성장 원인으로는 우선 부동산 가격상승보다 현금흐름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부동산 대세상승기였던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처럼 비공개 개발 정보에 근거해 투자를 할 때는 직접투자가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요즘 투자자들은 자산가격 상승을 기대하기보다는 매달 생기는 안정된 수익, 즉 '수익형 부동산' 투자를 선호한다.
투자환경 변화를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간접투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구ㆍ산업구조의 변화, 세계경제환경의 변화 등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이 많이 있는데 하나같이 전문적인 분석이 필요한 분야다. 특히 금융환경 변화에 대한 예측은 매우 중요하다. 저금리 시대의 금리변화는 고금리 시대보다는 자산가치에 훨씬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기준금리가 연 2.5%일 때 1%포인트의 금리변화는 과거처럼 금리가 연10%일 때 비해 자산가치에 4배의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동산펀드 상품이 많은 발전을 하며 간접투자 붐에 기여하고 있다. 관련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됐고 이에 맞춰 자산운용사가 다양한 상품을 투자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호텔ㆍ물류시설 등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자산운용사들과 자산운용규모가 10조원이 넘어가는 대형 자산운용사도 생겨날 전망이다. 전문화ㆍ대형화가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펀드시장이 향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선 자산운용사들의 발상의 전환과 전문성 제고가 필요하다. 저성장시대에는 과거의 운용방식을 고수해서는 투자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단일 기업이 대부분을 임차하는 건물에 투자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기라 불리는 요즘 5년 또는 10년 후에도 그 기업이 존속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투자자의 돈을 내 돈처럼'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요즘 투자자들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불안하다. 이런 투자자의 고충을 자기 문제처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아도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자산운용사가 많다면 투자자들은 시장을 떠날 것이다. 자산운용사의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질수록 부동산 펀드시장은 성장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강성 한국자산에셋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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