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다. 친노 핵심이라는 이해찬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더니 진짜 보수라는 유승민 의원도 결국 탈당으로 몰렸다.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인 강봉균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의 경제브레인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인 김종인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박근혜 정부를 일으킨 공신이다. 그가 당무를 거부해서 집으로 찾아오게 하는 모습은, 양위(讓位) 얘기를 꺼내 사도세자를 석고대죄 시키는 영조를 연상시킨다.
이 사극이 몇 편까지 갈지는 쪽대본이라 알 수가 없다. 다른 쪽은 유승민을 표적으로, 컷오프를 할까 무공천을 할까, 왕따를 시켜 피를 말리더니 '배려'를 한 것이란다. 여기에 킬러공천이나 윤상현의 "죽여버려"를 더 한다고 스릴러가 되지는 않으니 블랙코메디인지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당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인물들이 나서서 정체성을 운운하고 칼춤을 추던, 이 어리둥절 뒤죽박죽 동시상영은 이제 '공천'편을 끝냈다.
공천은 끝났으나 그 후유증은 계속될 것이다. 지난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인지는 모르겠으나 20대 국회는 더할 것이다. 공천된 인사들의 자질이 더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대선의 전초전을 치러야 하니 패권경쟁과 계파 갈등은 끊이지 않을 모양이다. 미래까지 담보로 잡힌 퇴행이다.
문제는 정당이다. 정당은 정권획득을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그 정책을 추진할 인물을 국민에게 소개하는 한편 사회에 산재한 개개인의 의사를 결집시켜 국가의사의 형성을 도모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국가와 사회를 매개하는 기능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공천이다. 정당이 제시하는 인물에 그 정당의 노선과 정책이 집약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천이 중요하며, 공천과정에서 새로운 기대주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만족과 감동을 주기에는 한국 정당이 허약하다. 그래서 단명이다. 야당은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이고, 여당은 대통령 앞으로 헤쳐모여를 계속한다. 지도부의 권위가 설 수 없고, 진성당원이니, 당의 노선과 정체성과 같은 거창한 말은 버겁다. 이런 정당들이 제대로 된 총선 공약을 내놓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여든 야든 국민정당을 표방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호환성이 있는 방안들을 내세울 것이다. 좋은 정책이나 구호가 있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갖다 쓸 것이니 정책대결이라 할 것도 없다. 본래 정책의 성패는 그 내용이 얼마나 좋은가보다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실현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추진하느냐에 달렸다. 양측 인물의 이력을 보아도 그렇다. 강 전 장관은 유승민 의원과 같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소신을 갖고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무슨 정책을 내놓든 설득력이 있을까? 김 전 의원의 경제민주화는 단물이 빠졌다. 앞으로 보름 남짓 무책임한 글짓기와 웅변대회가 열릴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리라. 이어지는 '공약'편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럼 누굴 찍나? 정당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정책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후보밖에 기준이 없다. 국민을 보고 정치를 했는가, 할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경력 좀 쌓았다고, 누구와 친하다고 해서 패권세력에 업혀온 낙하산인가? 의원으로서의 능력이 있는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 경제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 말이다. 그러나 선거기간 중에야 누구나 간이라도 빼줄 듯이 말을 하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후보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한다. 국민이 정치를 우습게 알면 정치의 보복을 받는다. 무서운 정치를 당한다. 역으로 정치가 국민을 우습게 알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줘야 한다. 정당의 후보와 선거구민의 관계에 대한 모욕은 후보 돌려막기와 재활용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올해 총선이 끝이 아니다. 내년에 대선, 후년에 지방선거가 연이어 있다. 원치 않는 정치의 계절 초입에, 우리 선거구에는 누가 나왔나부터 관심을 갖자. 이제 시작이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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