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책임 없다는 법원 판결…인위적 시세조정 아니라면 정당한 위험회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투자자가 주가연계증권(ELS) 수익금을 지급받기 직전에 '주식 대량 매도'로 손해를 봤어도 '허수 주문'이 아니라면 증권사의 정당한 '위험 회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박상옥)는 김모씨가 BNP파리바은행과 신영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김씨는 2006년 3월 하이닉스, 기아자동차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신영증권 ELS에 1억 원을 투자했다. 만기 3년, 조기상환 기회는 6개월마다 5회 부여되는 조건이다. 중간평가일 두 종목 종가가 모두 기준가격의 75% 이상인 경우나 중간 평가일까지 종가가 동시에 115% 이상인 날이 있는 경우 연 16.1% 수익을 더해 조기 상환받는 구조다.
첫 조기상환일인 2006년 9월4일 장 마감 10분 전 하이닉스 주가는 3만8000원으로 최초 기준가격의 75%인 2만1975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기아자동차 주가도 1만5950원으로 기준가격의 75%인 1만5562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BNP파리바은행이 기아차 주식 101만 8000여 주를 한꺼번에 내다 팔면서 기아차 주가는 기준가격의 75%보다 낮은 1만5550원으로 마감했다. 결국 김씨는 조기상환조건을 채우지 못했고, 이후 네 차례 중간평가 때도 마찬가지였다.
BNP는 신영증권과 스왑계약을 맺어 김씨가 투자한 ELS와 동일한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을 매입한 상태였다.
김씨는 BNP가 "기초자산 주식을 저가에 대량 매도함으로써 조기상환 기준 미만으로 가격을 형성한 뒤 가격을 고정유지시켰다"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조건을 조작해 ELS 조기상환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 종료 직전에 대량매도를 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허수 주문' 등 주가를 일부러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없다면 정당한 '위험 회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주가 등락에 따라 기초자산 보유량을 조절하는) 델타헤지 방법에 따라 주식매매를 했다면 그와 같은 주식매매는 시장요인에 의한 정상적인 수요·공급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결과는 대법원이 지난달 ELS 투자 손해를 둘러싼 대우증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과는 차이가 있다. 대우증권은 중간평가일 접속매매 시간대에는 호가를 높게 제시해 대부분 매도계약이 무산됐다. 반면, 장 마감 10분 전부터는 주식을 기준가격보다 저가에 집중 매도했다.
당시 대법원은 "중도상환조건의 성취 여부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헤지거래를 함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해야지 그 반대로 중도상환 조건의 성취를 방해함으로써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헤지거래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원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BNP는 100만 주 가운데 60만 주를 시장가에 매도 주문했다. 높은 호가로 매도 주문을 넣었다가 오후에 주문 가격을 낮춰 파는 등 시세조종을 위한 가장·허위매매 흔적이 없었다.
대법원은 "헤지거래로 인해 기초자산 시세에 영향을 주었더라도 파생상품 계약 조건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작하는 등 거래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시세조종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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