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발 실물경제 악화의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영업실적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신용등급은 대거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침체 등 대외적ㆍ일시적 요인 탓도 크지만 최근 우리 경제의 동요가 근본적으로는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신호들이다.
신용평가기관인 한국기업평가는 두산그룹의 4개 계열사에 대해 무보증사채와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고 어제 밝혔다. 두산뿐만 아니라 지난해에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던 기업 신용등급 하향이 2월 들어 다시 줄을 잇고 있다. 이달 중에 신용등급이 낮춰진 기업은 9곳인 반면 오른 기업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등급 산정의 근거가 되는 기업들의 2015년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이 지난주까지 실적을 발표한 코스피 상장사 222개의 4분기 잠정 영업이익을 집계한 결과 증권사들의 전망치 평균에 12.3% 미달했다. 기업들의 실적 부진은 부채에 대한 연체율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연체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그런가 하면 실적이 좋은 기업이라도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익을 새로운 투자로 돌리지 않고 금융기관 등에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이 예금 등의 형태로 보유한 돈이 전년보다 약 70조원, 13.5%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증가율은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1년 이후 가장 높다. 실적이 좋든 나쁘든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기업들의 실적부진과 투자기피는 활력을 잃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황이자 그 원인이다. 글로벌 경제가 두루 흔들리고 있긴 하지만 우리 경제가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는 등 체력 자체가 떨어지고 있는 것에는 이 같은 국내 실물경제의 부진과 위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기업 부문의 침체는 일시적 악재와 경기순환에 따른 현상인 면도 있지만 결국은 누적된 경쟁력 약화의 결과다. 단기간에 특효를 내는 처방이 있을 수 없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이 요구된다. 한편으로는 실물경제에 팽배한 무력감을 털어 낼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업의 위축된 투자심리를 살려내는 것이 긴요하다. 실적이 양호하고 투자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야 기업발 경기 활성화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기업이든 정부든 길게 내다보면서도 신축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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