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구멍 뚫린 인천공항의 보안을 사기업인 항공사가 맡아야 하나. 이 엉뚱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가 최근 항공사들에 보낸 한 장의 공문 때문이다.
'환승객 등 불법출입국 방지 방안'이라는 제목의 이 공문은 "항공사가 고위험 환승객을 도착게이트에서 환승구역까지 안내하고, 그 결과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인 부부와 베트남인의 밀입국 사건, 폭발물 의심 물체 발견 등 최근 잇따르고 있는 보안 사고로 곤혹스러운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가 대책을 내놓은 것인데 항공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고위험 환승객에 대한 항공사의 대응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출입국관리소의 주문을 보면 항공사들의 항변이 이해된다.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는 불법입국의 위험이 있는, 예를 들어 과거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추방당한 기록이 있거나 입국규제자, 분실여권을 소지한 고위험 환승객의 정보를 항공기 도착 전 항공사에 통보해 줄테니 항공사 직원들이 환승구역까지 안내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면서 항공사에 고위험 탑승객 정보 수신ㆍ처리 결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내 인력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달라고 요구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환승 대기 시간이 최대 72시간까지 달하는 환승객을 방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뜩이나 경영환경 악화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처지에 '왜 우리에게 짐을 지우냐'는 항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인천공항의 보안 구멍이 뚫린 것은 고위험 환승객이 아닌 생계형 밀입국자들에 의해서다. 이들은 인천공항의 환승객에 대한 보안이 취약하다는 점을 악용해 관광여행자로 위장했다. 설령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의 주문대로 항공사들이 대응을 한다고 해도 언제든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의 요구는 인천공항의 보안 문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공항 보안구역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 주요 기관들이 '각자 플레이'를 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임기응변식 미봉책을 내놓거나, 네탓 하기 바쁘다. 이번 공문은 항공사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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