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 분석 결과 발표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다정다감했던 40대 A씨. 사망 6개월 전부터 빠짐없이 참석했던 동창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리는 글도 중단했습니다. 사망 3개월 전부터는 식사량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이전에 입던 옷들이 헐렁해질 정도로 체중은 감소했습니다. 이를 걱정한 아내의 권유로 근처 내과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신체적으로 특별한 이상소견은 없고 만성피로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습니다.
이후 피로감과 무력감이 더욱 심해져 아이들이 말을 거는 것조차 귀찮아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망 한 달 전부터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TV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결근을 하기도 했습니다. A 씨는 아내에게 "회사에 가기 싫다" "죽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그 후 아내에게 "내가 없으면 당신은 뭐 먹고 살래?"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앉혀 놓고 "힘든 세상에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돕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사망 이틀 전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눈물을 보여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아내가 왜 우냐고 묻자 "고맙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A씨는 사망 당일 출근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사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자살은 한 가족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명중 9명(93.4%)은 A 씨처럼 어떤 식으로든 주변 사람에게 자살하기 전에 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심리부검은 가족·친지 등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자살자의 사망 전 일정 기간 동안의 심리적 행동 변화를 재구성해 자살의 원인을 추정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심리부검 대상자(121명) 93.4%가 자살 전 경고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가족의 81.0%는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자살 경고 신호는 죽음에 대한 직접적 언급, 주변 정리, 수면상태 변화 등 언어·행동·정서적 변화 등 다양하게 표현됐습니다.
분석 대상자의 88.4%가 생전에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꾸준히 치료를 받은 비율은 15.0%에 불과했습니다. 사망 당시 음주상태인 자살자는 39.7%로 조사됐습니다. 음주로 인한 문제 발생자 25.6%, 가족의 알코올문제 비율 53.7%로 우리나라 자살문제는 음주와 깊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번 심리부검에서 유가족에게 심리부검 면담 만족도를 평가한 결과 응답한 유가족의 88.0%가 심리부검 면담 이후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심리부검은 사망원인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유가족 면담을 통해 고인의 죽음을 객관적이고 통합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죄책감과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건강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심리부검은 중앙심리부검센터(센터장 김현수)에서 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와 경찰청, 기타 유관기관과 상호협력체계를 구축해 진단했습니다. 자살 사례에 대한 분석을 실시한 것으로 자살사망자(121명)의 유가족(151명)을 구조화된 심리부검 조사도구를 통해 면담했습니다.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정신보건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이번 심리부검 대상자들은 2015년에 중앙심리부검센터로 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 경찰 등을 통해 의뢰됐거나 유가족이 직접 심리부검을 의뢰한 자살사망자들입니다. 전체 대상자 121명 중 2015년에 사망한 사람이 56명(46.3%)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2014년 19명(15.7%), 2013년 19명(15.7%), 2012년 이전 사망자가 27명(22.3%)이었습니다.
이번 심리부검은 20세 이상의 성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대 18명(14.9%), 30대 26명(21.5%), 40대 27명(22.3%), 50대 27명(22.3%), 60대 이상 23명(19.0%)으로 연령대별로 균등하게 분포돼 있습니다.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심리부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까지 이르는 길목을 차단할 수 있도록 자살예방대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심리부검을 확대 실시해 자살원인에 대한 분석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자살 유가족에 대한 심리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복지부는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전 국민 정신건강증진, 우울증 등 정신질환 조기발견·치료 활성화와 자살예방 등의 내용이 포함된 중장기적 범부처 차원의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을 2월 중 수립할 예정입니다. 심리부검 결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심리부검센터(02-555-1095, http://www.psyauto.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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