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제부처 장관께 들은 얘기다. 30여 년 전 일이다. 당시 그는 과장이었다. 김장철인데 배추 가격이 폭등했다. 민심은 흉흉해졌다. 청와대는 불안했다. 자신이 맡고 있던 과는 바빠졌다. 머리를 맞댔다. 묘안이 떠올랐다. 바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원도 내 모든 군용 트럭의 동원을 요청했다. 밤새 영동고속도로는 군용 트럭이 꼬리를 물었다. 동이 틀 무렵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은 배추로 뒤덮였다. 당시 물가에 반영되는 배추 가격은 농수산물시장 가격이었다. 공급이 늘자, 사재기가 줄고 상인들은 그간 저며 놓은 배추를 풀었다. 마침내 배추 가격은 안정을 찾았다.
정부와 정책의 역할이, 소위 말해 잘 먹히던 산업화 시절의 얘기다. 목표 성장률을 위해 정책을 동원했다. 목표 성장률이 정해지면, 필요한 산업을 발굴하고, 지원을 쏟아 붓는다. 기술 인력이 필요하면 전문학교를 세웠다. 얼마든지 시장의 흐름을 정책으로 조절하던 시기였다.
요즘 경제정책을 보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과거와 규모, 범위,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의 정책 권한을 막강하게 휘두른다. 실패에 대한 피해와 책임은 국민의 몫이다.
대표적인 게 경기활성화 대책이다. 지난 18개월 동안 경제팀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주택담보대출 확대가 그러하다. 실물자산의 유동성을 높여 경기활성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대출을 확대해서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실물자산을 보유한 중장년층의 소비를 끌어내고자 했다. 활발한 거래, 가격 상승, 자산 이득 발생, 소비 확대가 시나리오다. 논리와 시나리오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틀렸다.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그렇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파트를 안전 자산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출을 받아서까지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출을 받아서 산다는 것은 아파트 가격이 반드시 오른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 방법밖에 없다. 월급으로 대출을 갚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급이야 빤하지 않은가.
이번에 아파트를 샀어도 걱정이다. 담보대출 확대로 미래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 확대로 3000만원의 추가 대출이 가능해 1억3000만원을 빌렸다 치자. 결국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이 3000만원 늘어난 꼴이다. 지금 과도한 소비를 한 셈이다. 자산 이득은커녕 미래 소비마저 위태롭다. 오로지 아파트 가격이 오르길 손 모아 빌어야 한다.
시장은 매매보다 전세나 월세를 선호했다. 전세 가격상승과 월세 수요증가가 이를 말해준다. 자산 이득을 기대할 수 없다면, 빚을 내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전세 보증금이 더 안전하다. 얼마 전 후배가 갖고 있던 5억원짜리 아파트를 손해 보고 팔았다. 그리고 2억원 대출을 받아 7억원짜리 전세를 얻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7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보다 7억원짜리 전세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답일 수 있었다.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솟았고, 가계부채라는 뇌관은 불이 붙었다. 그러다 보니, 경제팀은 틀어 놓은 수도를 잠그기로 했다. 내년부터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적용할 예정이다.
더 우려스러운 게 있다. 부처마다 현안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불과 한 달 전 국토부는 주택공급에 힘을 실었었다. 그러나 장관이 바뀌면서 주택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산업화 시대엔 경제팀과 국방부가 손을 잡았었다. 굳이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산업화 시대의 경제정책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정책보다 시장원리가 더 지배적이다. 그래도 성장은 필요하다.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보다 공급을 자극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보다 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는 그런 기업이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개혁도 수요보다 공급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이다. 노동개혁만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다.
정책은 정부의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다. 정책이 실패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