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란 단어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 MB시절 초반부터이니 벌써 8년이나 지났건만 병신년(丙申年) 새해에도 여전히 소통은 대한민국 리더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소통 부재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돼 왔지만 우리의 리더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해당되는 문제인지조차 모르거나 소통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소통 부재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후퇴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제왕적 리더십의 문제다.
제왕적 리더십의 특징은 권력의 독점과 상명하달이다. 일은 못하더라도 무조건 명령에 복종하는 자만 쓰고 바른 말하는 자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항명으로 치부된다. 왜 지시를 안 따르는지,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판단과 결정은 오로지 리더의 몫이다. 성경에 보면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 양을 두고 찾아나서는 목자의 비유가 있다. 제왕적 리더에게 한 마리 길 잃은 양은 처벌의 대상이고 제거할 대상일 뿐이지 찾아 나설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국무회의에서도 장관들이 대통령 앞에서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렇게 받아 적기 잘하는 장관을 뽑으려면 굳이 인사검증이나 청문회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공자님 말씀 중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국가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식량ㆍ군대ㆍ백성의 신뢰' 이 셋을 들었다. 셋 중에 하나를 뺀다면 무엇부터 빼냐고 물었더니 공자는 군대를 빼고 그 다음으로는 식량을 빼라고 하면서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고 답했다. 무척이나 훌륭한 말씀이라 우리의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자주 인용하긴 하는데 정작 신뢰를 얻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문제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는 제왕적 리더십이 아니라 소통의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소통은 일방적으로 외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나라의 리더들이 소통을 잘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적이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설득할 필요도 없고 설득해 본 경험도 별로 없다. 정치권에도 여당과 야당 간에 소통이 없고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보니 국민경제는 관심 밖이고 민생법안도 수북이 쌓여만 간다. 심지어는 당내에서도 계파 간에 소통이 없다.
소통에는 경청이 있어야 한다. 내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사회 곳곳에 각자 자기 목소리 내기에만 바쁘고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닫아 버리기 때문에 서로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도 소통은 되지 않는 것이다. 소통에는 공감도 있어야 한다. 공감이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다. 즉,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병신년 새해를 맞이해 우리 모두 과거의 불행과 불신, 반목은 뒤로 하고 한 마음으로 기쁘게 앞으로 나아가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부터 시작해 정치, 경제, 사회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낮은 곳에 처한 이웃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리더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럴 때 우리 모두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한국의 저력을 또 다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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