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4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 고조....화생방전 대응 국가 전략, '개념'도 안 잡혀...."돈 많이 들어가면 조금씩이라도 준비 시급"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전운이 일고 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만에 하나 북한이 현재까지 확보된 생ㆍ화학무기 또는 핵 전력을 사용해 공격해 올 경우 어떻게 될까? 불행히도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지만 사실상 이에 대한 정부의 대비는 '전무'한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의 화생방 공격과 예상 피해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미국이 2004년 공개했던 북한의 핵공격 시뮬레이션 동영상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는 북한이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피해를 예상해 모두를 경악시켰었다.
이 시뮬레이션은 북한이 사정거리가 가장 짧은 스커드 A/B형 미사일 1발을 사용해 국방부ㆍ합동참모본부ㆍ한미연합사가 밀집된 서울 용산구에 히로시마 원폭과 맞먹는 15kt의 '소형' 핵탄두를 투사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시간은 한겨울로 잡았다. 핵 투사 후 북한군의 주력 부대가 임진강ㆍ한탄강을 건너려면 강이 얼어붙는 한겨울이 최적기다.
시뮬레이션 결과 서울 중심부 용산 한복판에 투하된 북한 핵미사일 1발의 위력은 엄청났다. 폭발 즉시 반경 1.8km 모든 물질이 순식간에 녹아 증발한다. 이 순간 30만명이 즉사하고 10만명이 중상해를 입는다. 눈깜박할 사이에 용산역, 전쟁기념관 등 주요 건물들이 증발하듯 폭발해 사라진다. 반경 4.5km 내에 위치한 경복궁, 서울역, 시청, 광화문 등은 거대한 폭발력에 의해 찢겨져 나간다. 서쪽의 마포ㆍ서교동ㆍ여의도, 동쪽의 반포ㆍ압구정ㆍ청담동 일대, 남쪽의 상도동ㆍ동작동 일대도 대부분 파괴된다. 이같은 직접 피해를 통해 그 자리에서 40만명이 즉사하고 추가 사상도 22만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시뮬레이션의 결론이었다.
뿐만 아니라 낙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죽거나 사망하는 사람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다. 시간당 200램 이상을 쬔 사람들은 2~6주 내 사망해 최대 90만명 이상이 희생되며, 0.5램 이내의 극소량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평생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통받는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경우 서울 인구의 10%를 훌쩍 넘는 최대 125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물론 여기엔 주유소ㆍ가스저장소 폭발, 파편 등에 의한 간접 피해는 제외됐다.
북한은 핵 외에도 병원성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 무기, 화학 작용제를 사용한 화학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2009년 국립방재교육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화학무기 생산시설 8~11개소에서 생산한 화학무기를 약 2500~5000t 이상 보유하고 있다. 또 탄저균ㆍ페스트ㆍ콜레라ㆍ천연두 등 4종의 생물무기의 자체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은 유사시 전쟁 발발 당일에만 장사정포 396문, 항공기 80여대를 동원해 약 31t의 생화학 무기를 퍼부어 15만~280만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화생방'전에 사실상 속수무책
이같은 북한의 전략 무기에 대한 대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화생방 무기 공격에 맞서 민간인들을 보호하려면 우선 튼튼한 방공호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정부가 건설하거나 지정한 민방위 대피시설은 전국적으로 약 2만3000여개로 1억2000여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양적으론 넉넉하다. 그러나 이중 접경지역에 위치한 190여개의 신형 대피시설과 각 시ㆍ도 청사 등에 설치된 '충무용 지휘시설' 등을 제외하면 화생방 무기의 공격을 방어해 민간인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장비ㆍ시설ㆍ식량ㆍ약품 등이 갖춰진 곳이 없다. 그나마 약 절반 가량은 재래식 고폭탄 조차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인구가 집중돼 있는 서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약 4100여개의 대피소 중 서울시청사 지하 3층의 방공호를 뺀 나머지는 화생방 방호 기능이 없다. 공공시설ㆍ대규모 민가 건물 등의 지하에 대피소가 마련돼 있지만 비상시 라디오 청취만 가능할 뿐 화생방 방호 기능은 갖춰져 있지 않다.
대피체제도 엉망이다. 화생방 공격이 가해졌을 땐 신속한 대피가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군 화학대 출신 또는 화학물질 관련 면허를 소지한 사람들이 대피를 도와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현재 약 4만여명의 민방위대 화생방 요원 중 유자격자는 약 10분의1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소방방재청 자료를 보면 서울시 민방위대 화생방요원은 3만9343명인데, 이중 4608명만 유자격자다. 나머지 88.2%가 아무 경험ㆍ기술도 없는 일반인이다.
방독면ㆍ제독장비 등의 보유량도 형편없다. 1998년 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방독면 보유량은 28만3000여개로 목표치(174만여개)의 16.2%에 불과하다. 서울시가 뚜렷한 이유없이 현재의 정확한 보유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목표치 대비 보유량이 20%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독 장비도 약 10만개 정도의 목표 보유량 중 8만여개만 갖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상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도 극히 부족하다. 방사능ㆍ생물 무기에 당한 부상자는 주변을 오염시킬 수 있어 외부와 차단된 병상(음압병상)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중동호흡기 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났듯, 현재 서울 시내에는 서울대병원ㆍ서울의료원ㆍ국립중앙의료원 등에 15개의 음압병상만 갖춰져 있을 뿐이다. 그나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서울시가 음압병상 확충에 나서 올해 22개를 늘리고 2018년까지 중앙대병원ㆍ한전 병원ㆍ건국대병원 등 총 6개병원에 253개 음압병상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예산 들더라도 차근차근 대비해야
북의 화생방전 위협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30년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화생방 대피소 구축에 서울에서만 수십조원이 예상된다는 등 '돈 타령'만 하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예산이 부담된다면 순차적으로라도 조금씩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우선 방독면의 경우도 현재 보관만 하고 있다가 폐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재겸용방독면을 개발ㆍ보급하면 보급률ㆍ활용률을 높일 수 있다. 이스라엘ㆍ스웨덴의 경우처럼 국민 1인당 1개 이상씩 화생방 방호 장비를 갖추자는 의견도 있다. 또 건축법을 개정해 대형ㆍ공공 지하시설의 화생방 대피소 설치를 의무화하고, 민방위ㆍ예비군 교육시 화생방 방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HFC(Home Front Command:민방위 사령부)와 같이 고도의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비상관리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기존 의료기관들의 음압병동 보강 및 긴급 상황시 화생방 사상자 운송ㆍ치료 시스템의 재정비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한반도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화생방 피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서 생ㆍ화학 테러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북핵 위협도 엄존하고 있는 상태지만, 국가 차원에서 대비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 조차 정립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유사시를 대비해 사회ㆍ경제적 특성에 적합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전략 수립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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