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지금과 같은 분위기, 방식으로는 어렵습니다. 원점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4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는 '변화(쇄신ㆍ혁신)'라는 단어가 30번이나 나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사장단이 급여를 전액 반납했다. 임원(최대50%)과 부서장(10%)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1위의 중공업체 자리를 유지하겠다"던 10년 전 시무식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시무식풍경은 다른 기업들에서도 보였다. 삼성 현대차 등 10대그룹의 신년사를 분석해보니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변화(55건), 위기(48건,살아남기ㆍ생존), 미래 먹거리 선점(33건,기술력ㆍ역량ㆍ선도 등) 순이었다. 하나같이 현실을 위기로 인식하고 미래 먹거리 개발을 위해 신발 끈을 다시 조이자는 내용이다. 새해경영 환경을 낙관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지난해에도 위기극복은 총수들 신년사의 키워드 중 하나였지만 올해는 그 강도가 훨씬 셌다.
새해부터 대내외 경영환경은 나빠지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의 성장둔화, 저유가를 세계 경제 3대 리스크로 꼽고 있다. 중국증시가 급락하면서 중국 경기둔화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메이드인 코리아의 위상도 흔들린다. 세계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스마트폰은 샤오미ㆍ화웨이 등 중저가 스마트폰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조선, 철강, 건설기계, 석유화학 등 중후장대산업은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에 휩싸였다.
한·중·일을 비교하면 기업 경쟁력은 더 약해져있다.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필요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업 육성, 노동개혁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잘못된 정보와 대기업 특혜라는 선입견 때문에 관련 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경제단체들이 두 번이나 국회를 찾아 국회의장에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골든타임을 놓쳐 위기극복은커녕 생존마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신년인터뷰에서 새 경제팀에 바라는 점을 묻자 "경제팀한테 당부해서 되는 게 아니라서. 경제팀이 잘되도록 국회가 도와주소서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업과 기업인들이 고용과 투자, 연구개발 등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내년 신년사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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