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신입 명예퇴직' 논란부터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철회 결정까지, 두산그룹의 시계는 하루 사이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돌아갔다.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희망퇴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지난 15일, 사내 커뮤니티에서 나온 글들이 인터넷상에 퍼지면서부터다. '29살에 명퇴 당하는 경험을 다 해본다', '23세 최연소 명퇴도 있다'는 얘기들이 인터넷상에 돌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8일부터 사무직 30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생산ㆍ기술직 한 차례를 포함해 올해만 4번째다. 하지만 과거 세 차례 희망퇴직이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전 직급으로 확대돼 뒷말을 낳았다. 과장급 이상 인력을 과거 희망퇴직을 통해 대부분 추린 만큼 이번 구조조정은 5년차 이하 사원ㆍ대리급을 타깃으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희망퇴직은 자발적 사퇴를 전제로 함에도 갓 입사한 1~2년차 사원들까지 개별 면담을 진행해 사실상 반강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라는 사측의 해명에도 직원과 여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야구선수에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선언들과 중역 자제들만 감쌌다는 얘기들이 오버랩되면서 반발심만 커졌다. 한 직원은 "두산맨이 되고자 들어온 1, 2년차들은 갖은 협박과 회유로 푼돈 쥐어주면서 추운날 쫓아내고 야구단에는 왜 그토록 투자하면서 유지하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사내 커뮤니티에 남기기도 했다.
'사람이 미래다'는 두산그룹의 광고 문구는 화살이 돼 돌아왔다. 온라인상에서는 '명퇴가 미래다'고 비꼬며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지만 저렇게 가차없이 '미래'를 버리는 모습을 보자니 실소가 나온다. 기업 이미지 광고라는게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비난하는 글도 나돌았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통해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며 젊은층의 지지를 받았던 박용만 회장에 대해서도 '배신을 당했다'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실제 두산그룹에 입사한 신입사원들 중에는 기업광고와 박 회장의 이미지 보고 지원한 사람이 적지 않다.
결국 두산인프라코어가 포털 검색어에 하루 종일 올랐을 정도로 사태는 급속도로 악화됐고 그룹 전반의 이미지까지 타격을 입자 박 회장이 직접 여론 진화에 나섰다. 박 회장은 16일 새벽 다급히 업무 보고를 받았고 '신입사원 철회'를 지시, 이날 열린 그룹 경영진 회의에서 신입사원은 희망퇴직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박 회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건설기계업이 예상치 못한 불황을 맞이한 건 사실이지만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하는 건 아니다. 그건 안 된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신청 대상에서 입사 1~2년차는 제외된다. 하지만 3년차 이상 평사원은 대상에서 제외돼 상대적 박탈감 등 또다른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3년차 이상 직원에 대한 희망퇴직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 역시 '신입사원이 1, 2년 지나면 또 희망퇴직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등 여전히 날카로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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