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의장, 14일 이 전 의장 별세 소식에 서둘러 퇴청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14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퇴청한 시각은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빠른 오후 5시40분께였다. 국회에서 차량에 탑승하기 전 기자와 만난 정 의장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부음소식을 조금 전에 들었다"면서 "빈소에 가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이 전 의장의 별세 소식은 지난달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한국정치의 또 다른 거목을 잃었다는 점에서 정 의장 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여야는 각각 성명을 통해 "이 전 의장은 젊은 시절부터 강단 있고 소신 있는 정치행보로 많은 정치인들에게 귀감을 보였다"며 "언론인으로서 의회주의자로서 평생 동안 민주주의와 의회정치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해 오셨다"고 논평했다.
향년 83세인 이 전 의장은 생전 바른 말을 잘하는 소신파 정치인이자, 1963년 정계에 입문한 후 14대와 16대 국회에서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한국 현대정치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이 '강골 정치인' 이미지를 세상에 알린 것은 19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에 나서면서부터다. 1961년 5ㆍ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과 인연을 맺어 정치에 입문했지만 개헌에 대한 반대 입장은 확고했다. 이 때문에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 지시로 암살을 당할뻔 한 일도 있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직접 김 부장에게 전화해 "이만섭 의원 몸에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강골 성격 때문에 그는 국회 속기록에 기자 신분으로는 처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1공화국 시절 의사당 기자석에서 "자유당 이X들아"라고 외치다 당시 곽상훈 의장으로부터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세요"라는 주의를 받아 속기록에 이름이 오른 것이다.
지난달 서거한 김 전 대통령과는 예산안 처리를 놓고 맞섰다. 14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에 취임한 이 전 의장은 "날치기를 없애겠다"고 공언하면서 '예산안을 처리해달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압박을 거절했다.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날치기로 예산안이 통과됐고 여당의 압박도 상당했지만 끝내 버텼다. 하지만 이 전 의장은 이듬해 6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날 빈소에는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 등 각계인사들이 조문했다. 장례위원장이기도 한 정 의장은 애도메시지를 통해 "누구보다 꼿꼿하고 올곧은 참정치를 펼쳤다"며 "누구보다 훌륭하고 자애로운 스승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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