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8월 건조를 코 앞에 둔 원유 시추선 계약이 해지되면서 6300억원에 달하는 공사대금을 떼이게 됐다. 4년 전 7000억원에 수주했는데 시추선 발주사가 계약금 10%(700억원)만 주고 잔금 90%(6300억원)는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 해지는 대우조선이 했지만 사실상 발주사의 인도 거부라 할 수 있다. 해양 플랜트 경기가 나빠지자 발주사가 선수금을 떼이더라도 배를 인도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대우조선은 시추선 해지에 따른 수천억원의 손실 금액을 3분기 실적에 반영했다. 대우조선이 올해만 4조원대 손실을 낸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세계 조선업계를 휩쓸던 국내 조선 3사가 조(兆) 단위의 천문한적 적자를 기록한 직접적인 원인은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발생한 부실이다. 조선 빅3는 지난 8월 이후에만 네 건의 시추장비 계약을 취소당했거나 취소했다. 3개사는 이에 따른 손실(약 6700억원)을 3분기 실적에 추가로 반영했다. 대우조선외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도 지난 9월 반잠수식 시추선 계약을 취소당했다. 납기일이 지나도록 건조를 완료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한 건씩 계약 취소를 당했다. 조선 3사가 최근 1년간 이런 식으로 계약을 해지한 수주금액은 2조6600억원으로, 이 중 못 받은 잔금이 2조원이나 된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는데, 이 가운데 1조5000억원 이상이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서도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조선 빅3' 모두 손실의 상당 부분이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나왔다. 국내 조선 3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해양플랜트사업에 뛰어든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플랜트사업에 대한 평가가 '미래 먹거리'에서 '부실사업'으로 바뀐 것은 조선 3사가 기본설계와 핵심 기자재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기본설계를 테크닙과 같은 유럽의 전문 엔지니어링업체에, 드릴 등 핵심 기자재는 해외 전문 해양설비업체인 NOV와 MH워스 등에 맡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조선사들은 턴키(설계·시공 일괄계약) 방식으로 해양플랜트사업을 수주했다. 기본설계와 핵심 기자재 제작을 다른 회사에 맡기다 보니 이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기본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조선사가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건조하다가 뒤늦게 재설계를 요구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전체 공정이 지연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조선사에 넘어왔다. 주로 석유를 시추·생산하는 발주사들이 국내 업체에 맡긴 해양플랜트 인도를 거부하거나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것은 저유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설비를 가져가 봐야 운영해 이익을 남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3사가 확보한 해양플랜트 물량 가운데 이 같은 계약 취소 사례가 더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기준 조선 3사의 해양플랜트 수주잔량은 삼성중공업 243억달러(24기), 현대중공업 220억달러(24기), 대우조선 199억달러(22기) 등이다. 특히 대우조선은 잔량 가운데 시추설비가 14기, 77억달러 수준으로 비중이 높다. 시추설비는 투입비용이 많은 생산설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계약 취소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 3사가 수주 실적을 높이기 위해 경험이 없는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 들었다 큰 손실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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