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완주 기자] 정치인 김영삼을 대통령까지 만든 힘은 ‘멸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선친 김홍조옹의 조력이 큰 원동력이었다. 김옹은 거제에서 멸치사업을 크게 운영했다. 배 10여 척을 보유해 당시로서는 제법 큰 규모의 선주였던 김옹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당돌함을 보인 외아들이 정계에 입문할 때 김옹은 그리 내켜하지 않았다. 그러나 YS가 자유당 공천으로 27세 나이로 민의원에 당선되자 김옹의 물심양면 지원이 본격화됐다.
선거를 치루거나 정치활동을 하면서 항상 자금이 부족했던 YS에게 집을 사주는 등 자금줄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매년 명절 때마다 어획한 멸치 수만 포를 선물용으로 올려 보냈다. 정치권 인사 중에서 ‘YS 멸치’를 받지 못한 사람은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 정도였다.
YS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청와대로 들어서는 날 상도동 자택에 머물던 김옹은 아들의 큰 절을 받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김옹은 YS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청와대를 찾아간 적이 없다. 아들에게 혹시라도 누가 될까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옹은 YS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날 일간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영샘이는 정치인이니까 정치를 잘하면 되고, 내는 고기 잡는 사람인 만큼 앞으로도 여기에서 어장 일을 돌보며 여생을 보내야제.”
김옹은 과묵하고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은 성품 탓에 고향에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폭우로 인해 거제가 침수되자 경상남도에서 긴급 수해복구비 1억원을 긴급 편성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김옹은 대통령인 아들에게 연락해 지원 계획을 취소시켰다. 괜한 오해를 사기 싫다는 이유였다. 거제 주민들은 당연히 김옹을 향해 불만스런 목소리를 높였다.
김옹은 YS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자네 잘 있거라”라는 말을 남겼다. YS는 퇴임 후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의 소원을 한 건도 들어주지 못한게 제일 후회스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마 김옹은 아들에게 주기만 하고 받아본 적이 없는 대통령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순수한 열정만은 본인 스스로도 평생 만족하지 않았았을까?
정완주 기자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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