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따르릉~.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수정이 수시 넣었어?"
어머니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터져 나오는 오열을 목구멍 속으로 다시 구겨 넣으며 말했다.
"응 넣었어."
2016년도 수능을 하루 앞둔 11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의 한 관계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전한 한 희생자 학부모의 가슴 찢어지는 경험담이다.
그렇다. 우리는 바쁜 일상을 핑계로 잊고 있었지만, 올해 수능을 볼 학생은 정확히 250명이 더 있었다. 지난해 4월16일 오전 세월호와 함께 푸른 바닷속으로 사라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무사했다면 내일 부모님의 가슴 졸이는 배웅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할 수험생 숫자는 63만1184명이 아니라 63만1434명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이 4월16일인 희생자 학부모들에겐 올해 수능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괴로워할 날이 되고 말았다.
이런 학부모들에게, 갈수록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무관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비칠까?
진상 규명을 위해 정부 기구로 출범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제대로 활동도 못한 채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활동 시한을 둘러 싼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특조위가 요구한 예산안을 31%만 반영하고 69%를 대폭 삭감해 버렸다. 일부가 국회 농해수위에서 살아나긴 했지만 그대로 확정될 지는 미지수다. 활동 기간을 둘러 싸고도 정부 여당은 법을 엄격히 해석해 내년 6월까지만 활동하라는 입장인 반면 특조위와 야당 등은 내년 8월까지가 활동 기한이며 최소 내년 12월 까지로 연장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출범 때만해도 의욕을 보이던 특조위 내부 구성원들은 요즘 촉박한 시간ㆍ예산상 한계ㆍ정부 부처들의 비협조 등 때문에 "변변한 성과를 내놓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한다. 정부ㆍ여당과 보수 언론 등은 세월호 특조위의 예산에 대해선 한 푼 한 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며 스토커식 집착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정작 역사교과서 국정화 같은 '비민생적' 사안에 대해선 예비비를 불법 전용해 무려 44억원이나 지출하는 등 '묻지마'식으로 예산을 쓰고 있다.
어디 정부ㆍ여당만 그런가. 일베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세월호 희생자ㆍ유가족들에 대한 무관심ㆍ냉대가 강해지고 있다. 특히 수능을 앞두고 단원고 생존ㆍ잔류 학생 88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대입 특별 전형에 지나친 특혜 또는 역차별이라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일각의 이런 시각에 대해선 '잘못된 정보'로 인해 지나친 피해 의식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단원고 특별 전형은 '정원 외'로 뽑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에겐 피해가 없고, 무조건 합격이 아니라 각 대학 별로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학생만 합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화룡점정'을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10일 오후 SNS에 자필로 쓴 수능생 격려 메시지를 올렸다. 박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수험생 여러분,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여러분은 통일시대를 이끌어 갈 대한민국의 기둥"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정작 누구보다도 가슴이 아프고 힘들어 하고 있는 '수능생'들,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에 대한 위로는 일언 반구도 없었다. 한 번 찍히면 영원히 돌아 보지 않는다는 박 대통령 특유의 '뒷 끝' 때문일까? 박 대통령은, 당신이 챙겼어야 할 수능생은 250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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