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외교장관 회의에 이어 공동선언문 채택 실패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진행된 제3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확대 국방장관 회의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정면 충돌했다. 이에 제3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가 공동 선언문도 채택하지 못 하고 파행을 겪었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회의에 참석한 한 미국측 고위 관계자는 논의를 마무리할 어떤 합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를 주재한 말레이시아측 관계자들도 점심 때 예정됐던 공동선언문 채택 기념식이 취소됐다며 장관회의에서 지역 안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국이 최종 공동선언문에서 남중국해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없게 하려고 로비를 펼쳤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많은 아세안 국가들은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WSJ는 이와 관련 중국측 관계자에 답변을 요구했으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필리핀 마닐라 소재 라살 대학의 리처드 자바드 헤이다리안 교수는 "중국의 기본 입장은 남중국해에 대한 논의 자체와 남중국해에서의 자국 활동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떠한 성명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세안 회의에서 공동성명 채택이 실패한 사례는 이전까지 딱 한 번 있었다. 2012년 7월 캄보디아에서 진행된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로 인한 갈등 때문에 공동선언문이 채택되지 않았다.
지난 8월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폐막 후 하루가 지난 다음에 가까스로 공동선언문이 채택됐다. 당시 왕이 중국 외교장관이 아세안과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수칙(COC)' 제정 협의에 속도를 내고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활동을 끝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어렵게 공동선언문이 도출됐다.
하지만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이 최소한 9월까지는 인공섬 건설을 계속 진행하고 있던 사실이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이후 지난달 27일에는 미국 군함이 남중국해 인공섬 근해에 진입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진행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양국 국방장관은 이번 아세안 회의에서 별도의 양자 회담을 40분간 진행했으나 기존 입장만 재확인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중국 창완취안 국방부장과 회동에서 미군이 남중국해에서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말했고 창 부장은 중국의 주권과 안전이익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이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히삼무딘 후세인 국방장관은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미국이 주장하는 항행의 자유에 대해서는 지지하지만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이 지정학적 이해를 높여가고 있는 점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남중국해 영토 분쟁과 관련해서는 중국은 아세안 회원국 중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과 갈등을 빚고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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