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이전의 영화는 우주를 어떻게 그렸나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 디스코 음악만 듣다간 여기서 죽을 거 같아"
영화 '마션'의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지구에서 8000만㎞ 떨어진 화성에 고립된다. 통신장비는 부서졌고 식량은 31일치뿐이다. 다음 화성 탐사마저 4년 뒤.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감자에 진통제를 뿌려 한입 베어 물고는 허허실실로 절망을 밀어낸다. 28년 동안 무인도에 갇히는 '로빈슨 크루소'보다 열악한 조건이지만 긍정적 자세를 고수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우주나 지구나 다르지 않으니까. 생존의 희망을 포기한 지구인들에게 용기를 선물한다.
리들리 스콧(78) 감독은 이 주제를 위해 영화를 시종일관 밝게 풀어간다. 특히 배경에 도나 섬머의 '핫 스터프(Hot stuff)', 비키 수 로빈슨의 '턴 더 베스트 어라운드(Turn the beat around)', 델마 휴스턴의 '돈트 리브 미 디스 웨이(Don't leave me this way)' 같은 디스코를 깔았다. 노래가 흥행한 1970년대는 미국영화의 황금기다. 해마다 걸작이 쏟아졌고 산업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스콧 감독을 비롯한 미국 영화인들에게 그야말로 슬픈 계산이 없어 행복했던 시절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스콧 감독은 '프로메테우스(2012)'를 통해 우주를 두려운 공간으로 묘사했다. 그가 만든 '에일리언(1979)'은 특수효과 기술의 발달과 함께 1980년대부터 제법 등장한 우주 공포물의 효시이기도 하다. 미술과 세트의 미학으로 우주를 비밀스럽고 차가운 공간으로 그린다. 낭만이나 판타지가 낄 틈은 없다. 엄청난 스케일에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해 보인다. 화물선 노스트로모호에서 자아내는 폐쇄 공포가 더해져 답답하기까지 하다.
이런 색채는 폴 앤더슨(50) 감독의 '이벤트 호라이즌(1997)'에서 절정에 이른다. 우주선을 고딕 풍으로 디자인하고 중력 엔진을 기괴하게 표현해 시작부터 암울하고 불길한 느낌을 준다. 웜 홀을 통과해 만나는 우주 공간 어딘가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특히 후반부 고속으로 흐르는 연속 프레임에는 진한 광기가 묻어 있다.
디스토피아 세계의 구현은 아서 C. 클라크의 동명 소설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화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달, 목성, 토성 등의 행성과 우주 공간의 황홀한 비주얼을 세트와 시각효과만으로 정교하게 묘사했다. 리얼리즘을 쫓는 SF영화사에 표본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묘사된 미래 세계의 첨단기기들은 대부분 현실화됐다. 영화에는 어떤 외계생명체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놀리스로 표현되는 존재가 인류보다 월등하다는 암시만 한다. 그 과정에서 데이브의 죽음과 태아, 지구를 연결시킨 화면을 보여줘 죽음과 탄생의 반복이 인류의 숙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색칠은 대사 없는 도입부와 마무리, 정확한 설명의 생략 등으로 모호하다. 하지만 다양하고 심오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둬 다양한 우주영화 탄생의 토대를 제공한다.
사실 대중을 사로잡은 건 넉살좋은 낙관주의다. 우주에 낭만과 판타지를 심은 '스타워즈(1977)'와 '스타트렉(1979)'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특히 조지 루카스(71)의 '스타워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솔라리스(1972)' 등이 그린 철학적 사유의 우주공간을 단순한 활극의 무대로 바꿔놓았다. 다양한 캐릭터에 힘을 불어넣으며 특수효과를 앞세운 블록버스터의 신호탄을 쏜다. 당연히 볼거리는 풍성하다. 시각효과를 맡은 ILM의 장대한 우주공간과 광속을 돌파하는 워프, 제다이 기사들의 광선 검 등에 여전히 많은 이들은 열광한다.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엔터프라이즈호는 유려한 곡선미로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우주선 디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두 영화는 우주영화의 출발인 호기심에 충실하다. 현실화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다. 최초의 SF영화로 불리는 조르주 멜리어스 감독의 '달세계 여행(1902)'은 포탄이 달의 눈에 정확히 명중되는 우스꽝스러운 신으로 대변된다. 스톱모션, 합성 트릭 등 부족한 기술력을 드러내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처음으로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67년이 지나 아폴로 11호는 달의 표면에 우주인을 내려 보냈다. 영화가 현실 세계의 발명보다 몇 발짝을 앞서 간 셈이다.
21세기에 이르러 "신기하다, 아름답다, 특이하다"라는 감탄을 주는 우주영화는 드물어졌다. 웬만한 특수효과 장면에 시큰둥할 정도로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디스커버리가 "몇 년 뒤면 각국 우주항공 당국과 민간 회사들이 우주관광이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우주영화는 또 다른 변화에 다가가고 있다. 알폰소 쿠아론(54)이 연출한 '그래비티(2013)'의 주인공은 우주 공간이다. 인간이 작은 실수 하나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지만 지구에서 누릴 수 없는 고요함을 제공하는 두 얼굴의 세계다. 쿠아론 감독은 롱 테이크 촬영으로 작용과 반작용, 가속도, 중력의 법칙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3D 영상까지 제공해 관객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눈길을 모으는 영화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45)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는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웜홀 이론 등 쉽지 않은 과학적 지식을 풀어 '블랙홀'을 경이롭게 그린다. 각본을 쓴 조나단 놀란(39)은 4년 동안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는 등 다양한 노력으로 가설들을 정교하게 결합시켰다. 이런 시도는 우주 공간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처럼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테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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