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로 떠올랐다. 역사 문제가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다뤄져 논란을 벌인 것만 해도 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역사 문제를 내세운 정치권의 이념 공방이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은 최근 불거진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외에도 박상옥 대법관 인사청문회, 건국절 논란 등을 두고서 1년 내내 치열한 논란을 벌였다.
올해 1월26일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을 당시에는 28년전 사건이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제출되어 본회의 표결까지 100일, 대법관 공백 78일만에 처리됐다. 논란의 핵심은 박 대법관이 1987년 6월항쟁의 단초를 마련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ㆍ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이었다.
결국 이 사안은 대법관 공백사태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새누리당 단독 표결로 처리됐다. 당시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발언 등을 종합하면 박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의 최대쟁점 가운데 하나는 6월항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였다.
광복 70년 박근혜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에서는 건국절이 논란이 됐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 가운데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의미부여했다. 이는 2013년과 2014년 당시 정부 수립 65주년과 66주년으로 언급했던 것과 달라진 표현이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의 법통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찾는 헌법과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1948년 건국 주장은 뉴라이트측 역사관을 수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현재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역시 역사 문제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검인정 교과서가 '좌편향'을 보인 만큼 정부가 단일 교과서를 채택해 이를 바로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야당에서는 정부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대해 "친일을 근대화라고 미화하고, 개발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찬양하는 교과서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역사 전쟁의 이면에는 이념 전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보편적 견해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역사 문제를 통해 보수와 진보의 이념 문제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념 논란은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 등에서 살필 수 있듯 현정부가 꾸준히 준비해 왔다는 지적도 있다. 건국절을 옹호하고 나선 이인호 KBS 이사장이나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 등의 발언을 쏟아낸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임명 등이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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