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사람이거나, 동물이거나. 그의 그림 속엔 붉은 빛이 감도는 얼굴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광대 같거나, 비통하거나, 웃음지으며, 가끔씩은 무표정하고 때로는 어떤 불행 속에 허덕이는 듯 각양각색의 표정이 캔버스 마다 넘실댄다.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같지만, 작가 특유의 색채감각이 발현된 원색의 대비는 작품의 세련미를 높인다.
문형태 작가(39)의 신작들이 지난 3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전시됐다. 전시장 1,2층을 가득 채운 그의 그림들은 동화처럼 내러티브가 돋보였다. 그림 사이사이 작가의 말은 그림 읽기에 흥미를 돋궜다.
"거짓말하지 않고 참말을 했을 때 우리는 더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을 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오직 진실이 되는 예술로부터 위로받는다.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상상력이며 우리가 서로를 흔들며 바로 세우는 영감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서른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의 나이에 비해 굉장히 활발하게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회화와 오브제로 구성한 전시 작품 수도 70여점이나 될 정도로 많다. 워낙 작업량이 많기도 하고, 시장에서 반응도 꽤 좋다. 작가는 "작년까진 좀 예쁜 그림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림이 직설적이 됐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심히 작품을 살펴보면 인물의 두상을 쪼갠 모양 안에 스파게티가 담겼거나,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는 등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기억과 물건과 사람에 관한 기록"이라며 "작가의 일은 '창조'가 아니라, 길을 지나다가 어떤 메모가 떨어져 있으면 이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처럼 관객에게 공감을 채우는 역할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은 '실뜨기(Cat's Cradle)'가 됐다. 혼자가 아닌 두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실의 양끝을 한 사람의 손에 매었다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얽어 지며 여러 가지 패턴을 만들어가는 놀이다. 실타래가 꼬이지 않도록 잘 풀어내려는 아슬아슬한 스릴과 노력은 삶 속의 관계성을 의미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인간이 지닌 단순한 감각이 아닌, 복잡다단한 경험과 감정이 풍부하다. 보는 이에 따라 떠오르는 단어나 기억, 장면, 해석이 모두 다를 수 있다. 그의 색과 형태가 조화시킨 상상력과 위트는 그러한 다양성을 확장시킨다. 작품들을 설명하면서 그는 "그리움이나 슬픔과 같은 것보다는 본질적인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관계를 잘 맺으려면 그 고독이 건강해야 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열기 전 잠시 미국 여행을 떠났다. 온 종일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익숙한 그였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갈급함이 생겼다. 스스로에게 경고한 매너리즘에 대한 경계였다.
작가에게 그림과의 인연은 초등학교 시절 부친이 선물했던 인체데생용 누드집으로부터 시작됐다. 화가의 꿈을 지녔던 아버지는 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줬다. 자연스레 그림은 일상이 됐다. 손 위 누나 둘 역시 그림을 전공으로 하게 됐다. 작가는 원래 색채보다는 형태에 더 자신이 있었다. 누나들이 워낙 색감이 뛰어나 늘 비교가 됐기 때문에, 초반엔 구상보다는 추상화를 주로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후 상경해 홍대 프리마켓을 자주 드나들면서, 나무 필통과 볼펜에 일러스트 가미하는 디자인 작업을 수도 없이 하게 됐다. 이후엔 가수들의 앨범재킷이나 뮤직비디오 소품 등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작가의 현재 작업에 좋은 밑거름이 됐다. 그는 "이제 잘 팔리는 작가 보다는, 좀 더 진중하게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조심스레 얘기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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