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원합의체 15일 판결, 50년 지속한 이혼 유책주의 판례 변경 여부 결정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김재연 기자]바람을 피운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했을 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판례를 변경할까. 법조계 안팎이 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루 앞두고 술렁이고 있다.
대법원은 15일 바람을 피운 뒤 다른 여성과 사는 A씨의 이혼 청구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A씨는 1976년 결혼했지만 1998년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았다. A씨는 2000년 집을 나간 뒤 15년째 혼외자를 낳은 여성과 동거하고 있다. A씨는 부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1965년 결혼생활에 파탄을 낸 배우자(유책 배우자)가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례를 내놓은 바 있다. 법원은 이후 50년째 '유책주의'를 토대로 이혼 사건을 판단하고 있다.
유책주의는 이혼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혼 소송에서 부부간 극심한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혼을 하더라도 당사자의 고통과 수치스러움, 비참함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한데 유책주의는 이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적인 대세는 '파탄주의' 쪽으로 흐른 지 오래다. 가족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경우 이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파탄주의다. 현실에 맞게 파탄주의를 도입하는 쪽으로 대법원 판례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며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지난 6월 A씨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이 파탄주의 도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굳이 공개변론을 열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15일 전원합의체 판결이 주목받고 있다.
파탄주의는 이혼 책임이 없는 배우자 보호에 결정적인 문제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노영희 변호사는 "간통죄가 폐지된 상태에서 파탄주의까지 도입되면 제도적 뒷받침이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여러 문제가 파생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딴 살림을 차리고 처자식을 내쫓은 B씨의 이혼청구를 최근 기각했다. B씨는 시부모와 갈등을 겪던 부인을 그대로 둔 채 가출한 뒤 다른 여성과 동거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B씨는 22년 만에 이혼 소송을 냈고, 부인과 아이가 살던 아파트(B씨 아버지 명의)를 자신과 동생 명의로 바꿨다. 부인은 병에 걸린 시부모를 문병하며 돈독한 관계로 지냈지만,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남편 B씨의 상속권 행사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될 처지에 놓였다.
재판부는 "이혼 청구가 인용되면 (B씨 부인은) 대책 없이 '축출 이혼'을 당해 참기 어려운 경제적 곤궁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법원이 파탄주의를 도입하는 쪽으로 판례를 변경하더라도 B씨 사례처럼 '축출이혼'은 제한하는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둘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인 이명숙 변호사는 "대법원이 '단서 조건'을 달고 이전보다 파탄주의에 대해 완화된 판결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실제 대법원 판례변경이 이뤄진다면) 간통죄 폐지 때보다는 파장이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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