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정부는 북한이 '수공(水功)'을 위해 금강산댐을 건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저수량 200억t의 금강산댐에서 물을 방류하면 서울은 '물바다'가 될 거라고 했다. 또 북한이 금강산댐을 짓는 것은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언론은 서울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대서특필했고 국민들은 공포에 질렸다. 댐은 댐으로 막자며 금강산댐을 막을 '평화의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정부의 발표에 모금 운동이 진행됐다. 기업들은 거금을 쾌척하고 초등학생들도 쌈짓돈을 털어 북한의 야욕에 맞섰다. 600억원이 넘는 돈이 모금됐고 이듬해 2월 평화의 댐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93년 8월 31일 감사원은 이 모든 것이 사기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빗발치는 민주화 요구를 잠재우고 시국을 전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북한의 수공위협에 대한 정보를 조작한 것이었다. 이 사기극의 최고 책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고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실무를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강산댐의 규모는 정부가 발표한 것보다 훨씬 작았고 물이 방류되더라도 서울은 아무 피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댐을 만든다는 정보는 전혀 없었지만 안기부가 이를 지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당시 정부가 시국 안정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두고 정보 분석 결과를 과장해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또 안기부는 각 기업별로 많게는 10억원까지 평화의 댐 성금을 내도록 강제 할당했고 성금 성과를 높이기 위해 연말 불우이웃돕기 모금도 보류하도록 했다고 한다. 평화의 댐 사기극은 권력 유지를 위해 분단 상황을 이용해왔던 정권과 정부에서 발표한 것을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평화의 댐이 남긴 교훈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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