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으로 치닫는 롯데그룹 '왕자의 난'…시민들 "볼썽사납다"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원다라 기자] "어렸을 때부터 롯데 껌을 씹고 자랐고, 수학여행 때는 고속버스에서 '칠성사이다'를 마셨던 추억이 가득합니다."
3일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박선희(56·여)씨는 최근 롯데그룹 사태를 보며 안타까움과 실망의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다른 재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따지고 보면 롯데는 국민이 키워준 회사인데 (형제들이) 내 것이니 어쩌니 하며 다투는 모습이 볼썽사납다"고 지적했다.
롯데그룹 측은 사태 해결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이다.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은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농심 라면과 함께 칠성사이다를 구매한 곽모(82) 할아버지는 롯데 일가가 보여준 모습에 쓴소리를 전했다.
그는 "3남 1녀를 낳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손찌검한 적이 없다"면서 "하물며 사람들이 다 주목하는 재벌 가문에서 아들에게 손찌검했다느니, 아버지의 판단력이 어떻다느니 하는 낯부끄러운 얘기가 나오는 게 말이나 되느냐"라고 되물었다.
롯데는 국민 삶과 밀접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일반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른 기업의 경영권 다툼과는 차이가 있다. 학창 시절은 물론 성인이 돼서도 롯데와의 인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롯데에서 쇼핑하고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지금의 사태는 한여름 불쾌지수를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팬들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박정규(30)씨는 "롯데그룹은 한국에서 버는 돈이 많은데, 정작 구단에 쓰이는 돈은 일본 롯데자이언츠 쪽이 더 많다고 들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매운동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아들의 대화 내용, 아들의 언론 인터뷰 내용 등이 방송을 통해 전해지면서 더욱 불편하게 느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말보다는 일본말이 더 편한 모습, 기본적인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잠실 롯데월드를 찾은 김용진(49)씨는 "우리나라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국 롯데도 일본에서 경영권을 가질 테니 둘 중 어느 쪽이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조차 든다"고 말했다.
롯데월드에서 만난 허경욱(30)씨도 "한국 기업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문제가 커진 것은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면서 "어떻게 '죄송하다'라는 말도 (한국어로) 제대로 못 하느냐"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롯데에 대한 실망도 드러냈지만 어떻게 해서든 좋은 방향으로 잘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을 자기 소유물로 인식하는
전근대적인 인식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롯데마트를 자주 이용하는 김연숙(65·여)씨는 "그 사람들(롯데 일가)을 보면 회사를 마치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김진영(26)씨는 "전체 지분 중 2~3%를 가진 가족들이 회사 소유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롯데그룹은 유통·면세점으로 성장해서 시민들과의 접촉도가 높은 기업"이라며 "삼성·현대차그룹 등 굴지의 기업들도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롯데 역시 복잡하고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조직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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