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장관은 2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전기장치나 기계장치와 같이 유형의 설비를 감청설비로 간주하고 있어서, 지금 현재 소프트웨어는 무형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감청설비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소프트웨어로 감청설비를 인가 신청한 사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재유 미래부 차관은 한발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는 감청설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날 소프트웨어가 감청설비에 포함되는지 쟁점이 된 이유는 국정원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10조2에 따르면 정보수사기관이 감청설비를 도입하는 때에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인 RCS의 경우 국회에 보고되지 않아 이 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킹 프로그램 도입이 국회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최 장관 등은 소프트웨어는 감청설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국정원이 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옹호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은 법 제정 직후 정통부의 설명과 정반대다. 2002년 기업들의 사내 해킹 논란 당시 정통부 담당자는 이메일 송수신 등을 감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감청설비로 정통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영역에 사내 감시프로그램이 모두 포함되는 만큼 구입전에 기업들은 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정통부장관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역시 감청설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수사기관이 감청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경우에도 관련법에 따라 보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기기가 보다 고도화되고 감청 위험이 더욱 커진 현재 시점에서 주무부서 장관은 13년 전 정부 입장을 바꿔 감청에 핵심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가 감청설비가 아니라며 해킹 프로그램 도입 등은 국회에 보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상호 새정치연합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같은 시대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구분해서 하드웨어는 감청 장비고 소프트웨어는 감청 장비가 아니라는 주장은 어이없는 답변"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2002년 소프트웨어 역시 감청설비라고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감청설비 인가가 없었다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정부가 소프트웨어를 감청설비로 보고 있었음에도 국민들의 통신비밀 보호를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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