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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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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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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또는 빌게이츠)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이 재기발랄한 질문을 슬쩍 비틀면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배출하자'는 구호로 변신한다. '혁신의 아이콘'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우리의 소유욕이랄까. 언제부턴가 정부와 기업과 대학들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육성하자"고 부르짖는다. 영웅의 재림을 염원한다.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한 번 가정해보자. 정말 스티브 잡스가 이 땅에서 태어났다면.

잡스의 인생 궤적은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기계공인 양부모에게 입양되는 극적인 스토리로 시작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수업을 자주 빼먹는 사고뭉치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기계(컴퓨터)에 약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 가서는 1년 겨우 공부하다 중퇴하고 히피 공동체에 몸을 의탁했다가 불현듯 인도로 건너가 참선에 빠졌다. 애플을 창업해 '무림의 고수'가 되기 전까지 잡스의 성장기는 이처럼 전혀 고결하지 않은 B급 행적으로 꼬깃꼬깃 채워졌다.


그런 궤적을 대한민국에 대입하면 틀림없이 비루한 캐릭터가 배출된다. 질풍노도의 문제적 청소년기를 거쳐 변변한 대학 졸업장도 없는 '학연 지연 혈연'이 결핍된 3류 인생. 근본 없는 천덕꾸러기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겨우 외우고, 풀고, 시험보느라 지쳐가는 음울한 청춘. 경쟁에 허덕이면서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짊어지고 살아가다가 어느날 문득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패배적인 자신을 발견하고 좌절하는 궁핍의 삶.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투명인간이 되고 말았을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런 사회적 병폐는 나 몰라라 한 채 '잡스 나와라 뚝딱!'만 외치는 어른들의 입방정이라니.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잡스가 어려서부터 코딩을 했다는 행적은 듣도 보도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어린 시절 밥 먹듯이 책을 읽으며 인문학적 교양을 쌓았고 코딩은 13살 이후 시작했다지 않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코딩을 주입식처럼 꾸역꾸역 시키면 제2의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남귤북지(南橘北枳),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딩인가, 스티브 잡스인가. 아니면 잡스 같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인가. 학연ㆍ지연ㆍ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기행과 파격과 도전을 인정해주고 실패와 좌절을 보듬어주는 그런 사회 말이다. 그런 사회라면 누구나 잡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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