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얻은' 치프라스 vs '선택 기로' 메르켈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5일(현지된) 국민투표 이후 그리스 사태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간의 맞대결로 고조되고 있다.
40대 좌파 그리스 총리가 정치 9단 메르켈의 뒷다리를 제대로 걸고 넘어졌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메르켈은 강력한 반격 카드를 가지고 있다. 그는 국민투표 결과를 사실상 무효로 만들 수도 있다. 시간은 오히려 메르켈 편이라는 평가다.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민심을 바탕으로 명분을 얻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태도는 일단 강경 노선을 천명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원하는 것은 채무탕감이다. 그는 국민투표 결과를 통해 국민들의 재신임을 확인한 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라 채무탕감을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메르켈이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경우 치프라스의 입장도 난처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스는 당장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20일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유로를 갚아야 하는데 그리스 정부에는 현재 이 자금이 없는 상황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긴급유동성지원(ELA)을 중단할 경우 그리스 은행들은 디폴트가 불가피하다.
일단 강경 노선을 천명한 치프라스에 메르켈이 강경 노선으로 맞선다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협상 테이블은 걷어차이고 그리스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메르켈 총리의 대변인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5일 저녁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통화하고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키로 합의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차적인 반응일 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국민투표 결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5일(현지시간) 분석하며 긴축 조건을 완화해주거나 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어떤 선택도 위험부담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구제금융 조건을 완화해주는 양보를 선택하면 독일 내에서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부채 위기국가들이 그리스의 사례를 따를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리스를 필두로 스페인 등 다른 남유럽 국가들도 채무 탕감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결론적으로 메르켈 총리가 자신이 임기 중에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던 유럽 채무 부담을 결국 특정 국가가 아닌 EU 전체가 공동 부담하는 쪽으로 논의가 확산될 수 있다. 채무 공동 부담은 독일의 부담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메르켈이 수용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경우 그리스의 반발이 커져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점이 부담요인이다. 하지만 독일 입장에서는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경우 채무 부담 위험을 키우지 않을 수 있다는 실리를 취할 수 있다. 메르켈 총리 입장에서 강경노선 고수는 국민투표에서 한 방을 먹은 것에 대한 역공이 될 수 있다.
긴축을 수용해야 하느냐에 대한 선택권을 결국 그리스에 넘기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치프라스와 메르켈의 치열한 두뇌 게임은 이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변수다. IMF는 오는 9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 수정판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사태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IMF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현재 그리스의 채무상환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그리스의 구조개혁에도 강경한 노선을 고수해 채무협상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요컨대 IMF는 그리스와 채권단 양쪽 모두 한발씩 물러나 타협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변수를 만들어냈지만 유럽이 그리스를 감당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상황은 변함이 없다. 힘을 합쳐 그리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계산할 수 있는 추가 비용을 감당하거나 아니면 그리스를 팽개침으로써 계산할 수 없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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