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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돈 안쓰는 대기업들, 속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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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돈 안쓰는 대기업들, 속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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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건실한 대기업들의 대출 기피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올들어 상황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대기업 대출 담당자가 '갑'이 아니라 '을'로 전락한지 한참 됐죠. 요즘은 건실한 대기업을 찾아다니며 돈을 좀 써달라고 읍소할 정도예요."

A 시중은행의 기업여신담당 부행장은 지난달 실적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1980년대 입행 당시 그에게 대기업 여신 담당자가 된다는 것은 '별'을 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저금리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위상이 바뀌었다. 기업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부실 위험이 낮은 대기업들은 직접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대출의 빈 자리는 자연스레 리스크가 큰 기업이 메꿨다. 이 과정에서 부실을 키운 주범이란 오명도 썼다. 1%대로 기준금리가 떨어진 후 대기업 여신 담당의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하나은행의 대기업 여신 잔액은 14조769억원을 기록, 작년 말보다 5.7% 줄었다. 1년 전인 작년 5월 잔액보다는 16.2% 감소했다. 농협의 5월말 대출 잔액은 작년 5월말 보다 8.2%가 감소했고 국민은행 역시 이 기간 5% 줄었다. 작년 말 이광구 행장 취임 후 공격적으로 자산을 늘리고 있는 우리은행도 5월말 현재 20조9028억원의 대기업 대출 잔액을 기록 중이다. 작년말 보다 8.2%가 늘어난 수치지만 1년전보다는 1.3% 줄었다.

이처럼 대기업의 은행 외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작년 8월 이후 4차례의 인하 과정을 통해 1.50%까지 떨어진 후 회사채나 기업어음(CP) 금리도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지난 22일 기준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AA- 등급) 금리는 연 2.015%로 3%대를 웃도는 은행 대출 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낮다. 은행 대출금리와 회사채 금리 차이는 곧 대기업들의 자본시장행 가속화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5개월간의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2조1000억원으로 작년 1년간의 순발행액인 1조8000억원을 넘었다.


경기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대기업들이 대규모 설비 투자 등을 늦추며 사내 유보금을 쌓고 있는 것도 대출 수요를 줄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10대그룹의 96개 상장계열사의 2014회계연도 개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집계한 사내유보금은 503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7조6300억원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출을 갚는 대기업들도 속속 늘고 있다. 실제 지난달 대기업들의 차입금 상환액이 늘면서 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2조원이 줄었다.


이 와중에 시중은행들이 경기 불확실성에 대기업 대출에 한층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도 한 몫했다. 경기침체로 2013년 STX, 동양그룹 사태를 겪은 데 이어 지난해에도 현대ㆍ한진ㆍ금호ㆍ동부그룹 구조조정으로 홍역을 치르자 올 초 기업여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짜야 한다는 게 시중은행권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3월과 6월 전격적으로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수익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은행들도 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영업을 강화하는 등 기업 대출 전략을 다시 짜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대출 강화는 박근혜 정부와 보조를 맞춘다는 측면도 있지만 초저금리 시대 대기업 대출의 위축에 따른 대체 시장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도 있었던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초저금리가 지속되는 이상 대기업들의 직접 금융 선호 분위기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당분간 대기업 대출 축소와 중소기업 대출 강화라는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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