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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신뢰 생태계] 2. 정부ㆍ가계ㆍ기업 '불신 사이클'..경제는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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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시스템 고민, 타협기구 재정비 필요"

[이젠 신뢰 생태계] 2. 정부ㆍ가계ㆍ기업 '불신 사이클'..경제는 울상 그래픽=조윤경 기자 spring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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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정부가 메르스로 인한 경제 악영향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부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계와의 협업이 절실한 시기다."(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


"우리도 메르스로 인한 과도한 불안감이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대응 노력에 적극 협조해 나가겠다."(경제 5단체 부회장들)

지난 11일 정부와 재계는 모처럼 만에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부가 요청하고 재계가 기꺼이 화답하며 어깨동무를 한 것이다. 메르스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이라 힘을 합치기로 했지만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양 측 사이에는 불신이 팽배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13일 경제 5단체장에게 적정한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청하자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재계는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말로 부정적인 속내를 내비쳤다.

당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는 기업부문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높여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부작용을 없앨 정책 수단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판단력이나 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최 부총리와 경제 5단체장이 처음 만났던 작년 7월에도 최 부총리는 기업인들에게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달라고 당부했고 기업인들은 사내유보금 과세를 신중하게 판단해달라고 요청해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정부 규제가 과도하고 정책은 일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깊숙이 깔고 있다"며 "특히 정권에 따라, 심지어는 같은 정권 임기 내에서도 경제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이후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정책 방향을 뒤집은 데 이어 최근엔 소비 활성화를 이유로 기업들에 희생을 독려하고 있다. 기업들로선 '정부 정책에 휩쓸리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할 법하다.


기업이 정부를 믿지 못한 채 '마이 웨이'를 가는 가운데 국민들은 기업ㆍ정부 양쪽을 모두 불신하는 형국이다. 특히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돈을 사내에 쌓아두는 문제는 경제 주체들 간 불신의 골을 갈수록 깊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기업소득환류세제를 통해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했음에도 지난해 10대 그룹 상장계열사들이 사내에 쌓아둔 유보금은 1년 새 40조원 가까이 늘어나 500조원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사내유보율은 10대 그룹이 1300%를 넘었고 SK텔레콤 등 11개 상장 계열사는 무려 1만∼3만%에 달했다.


소비자들과 제조업체간의 신뢰 역시 탄탄하지 못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83%가 블랙컨슈머의 부당한 요청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느끼는 불신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험사가 고객에게 소송을 제기한 건수는 2032건이다. 2012년 495건에서 2013년 550건, 지난해에는 987건으로 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 중에는 블랙컨슈머 대응도 있으나 보험사가 소송을 소비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거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정부-기업-가계의 신뢰 사이클이 무너진 상황에서 사회적 타협이나 경제 위기 돌파는 요원한 일이었다. 4월 초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화는 석 달간 진통을 겪다 결국 결렬됐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경기는 메르스 사태로 더욱 울상을 짓고 있다. 수출은 5개월 연속 감소하고 4분기째 0%대의 저성장 국면을 지속하는 모습이다.


뉴욕 소재 실버크레스트 에셋매니지먼트의 패트릭 초바닉 수석 투자전략가는 CNN방송에서 "메르스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질병을 통제하고 또 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신뢰를 국민들에게 얼마나 심어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충격을 벗어나는 핵심 요소 역시 신뢰라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정책과 한시적인 타협기구에서 벗어나 은근하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용철 교수는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과정 등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1979년 이후 수백 가지의 민영화 기법을 동원해 상업-공익설비-공공서비스 부문의 민영화를 성공시켰다. 정부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장기간에 걸쳐 기업과 가계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가동하고 있는 타협기구들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렬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노사정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등이 있지만 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다"며 "뭔가를 새로 만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구들 속에서 왜 서로 간에 믿지 못하는지, 어떻게 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 등을 치열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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