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지난 주말 왼쪽 손을 다친 남편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기 위해 차선을 바꿀 찰나 "1차선으로 미리미리 바꿔야지"라며 조수석에 앉은 남편이 훈수를 뒀다.
이번엔 우회전해야 할 갈림길을 앞두고 2차선으로 갈아탔더니 "삼거리 지나서 바꾸면 되지. 왜 이렇게 급해"라며 지적을 했다. "좀 전에는 미리 바꾸라면서? 왜 이랬다, 저랬다 해?"라며 응수했더니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지"라고 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은 아들도 한 마디 거들었다. "엄마, 노란불이에요. 브레이크 밟아야죠." 초보운전자도 아닌데 남편과 아들이 번갈아 가며 계속 그랬다. 한 두번이면 넘겼겠지만…. 폭발했다. "나도 (운전경력)15년차란 말이야!" 잠깐 멈칫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몇 분 후 다시 잔소리 같은 훈수는 또 이어졌다. 운전하는 내내 왼쪽 깜빡이를 켜려고 하면 "좌측 신호", 오른쪽 깜빡이를 켜려면 어김없이 "우측 신호"라는 식이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2시간여 운전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자 "휴…"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기준금리 정책을 앞두고 사방서 훈수를 들어야 할 한국은행의 마음이 이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11일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본회의를 앞두고 사방에서 한은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표적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3.0%로 낮추면서 1~2차례의 기준금리 인하시 가능한 수치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경제팀 수장을 맡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예 KDI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고해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며 한은을 압박했다. 때마침 미국이 올해 중 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한국 통화정책에 대해 훈수를 두는 관계자들이 더욱 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한은의 고민이나 경제당국의 고민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곳 모두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경기를 회복시킬 것인가가 최대 고민이자 과제일 게다. 내수 경기와 수출 실적의 부진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면 한은 금통위원들도 금리인하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때 금리를 내려야 경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한은을 옥죈다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내렸다는 인상을 낫게 할 수 있다. 자칫 한은에는 치욕일 수밖에 없는 '기획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망령이 되살아 날 수도 있다. 이주열 총재가 "통화정책과 관련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의 언급은 신중해야 한다"며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한 것도 이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는 내릴 수도, 동결할 수도, 올릴 수도 있다. 국내외 경제적 여건은 물론 정치적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 결정이 '척하면 척'식으로 이뤄줬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중앙은행의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통화정책을 이끄는 한은의 금융시장 관리 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통화정책의 효과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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