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인 2010년 6월, 금융 서비스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브렛 킹(Brett King)은 'Bank 2.0'이란 책을 출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은행은 향후 5년간 지점을 통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빨리 시작하라!" 이 말은 이제 현실이 됐다. 최근 한국은행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자동화기기 등 비대면 채널을 이용해 은행 업무를 이용하는 비율이 전체 거래의 90%에 육박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맞춰 은행의 지점 수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35년 넘게 은행에 몸 담아 온 필자에게 지난 어느 때 보다 최근 5년은 아주 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은행은 시대를 막론하고 보수적이고 변화에 인색한 조직으로 꼽혀왔다. 돈과 신용을 다루는 업의 태생적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은행은 그 어떤 산업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저금리 시대가 고착화되면서 은행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IT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고객행동의 변화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시절, 목 좋은 큰 사거리 상가나 빌딩 1층은 항상 은행 지점의 차지였다. 비싼 임대료와 시설료, 거기에다 수 십 명 직원의 인건비를 모두 제하고도 높은 수익성이 보장됐다. 하지만 은행의 예대마진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요즘 전통적인 고비용 구조의 지점 영업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핀테크(Fintech)를 포함한 금융 IT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고객이 은행을 이용하는 모습을 크게 변화시켰다. 지갑 속 현금 뿐 아니라 플라스틱 카드까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고 바다 건너 쇼핑몰의 물건도 클릭 한 번으로 결제하고 집 앞까지 배달되는 세상이 됐다.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모바일 기기가 그대로 은행 창구로 변신해버린 세상에서 과연 은행이 언제까지 엄청난 고정비용을 요구하는 지점을 다다익선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객이 은행을 만나는 접점도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전통적인 채널인 지점에서 시작해 콜센터, 폰뱅킹, CD/ATM,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그리고 찾아가는 뱅킹 서비스까지 등장을 했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은행은 지난 해 태블릿 PC에 은행 창구업무를 대부분 구현해 직원들이 이 태블릿 PC를 들고 고객을 찾아 나선다. 예적금 신규는 물론 대출도 현장에서 처리가 완료된다. 고객 반응도 좋다. 사무실, 커피숍, 공원에서도 은행 업무가 가능해지면서, 고객은 은행에 가는데 빼앗겼던 시간을 되찾았다. 이로 인해 직원의 업무생산성은 약 36% 성장했고 종이도 13만장 이상을 절약했다. 이 기술력은 해외로 수출되는데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개발에 참여하게 됐다. 고객의 행동 패턴이 변화하고 그에 맞게 은행의 구조와 채널이 변하는 것은 이제 필수적인 상황이다.
전세계 카메라 및 필름 산업의 독보적인 업체였던 코닥은 디지털 시대로의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다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IT 기술이 앞으로 금융산업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은행업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 때문에 은행산업의 새로운 내일을 더 기대한다. 변화하는 고객의 기대치와 니즈를 파악하고 이에 맞게 발전하는 IT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욱 편하고, 안전하고, 쉬운 금융 서비스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은행산업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박종복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