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황혼 재혼…"최고의 노인복지 증진 수단"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원다라 기자] 평균 수명 80세 시대다. 60대 이후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황혼 재혼'이 새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어르신들 사이에선 '복지관 커플'이라는 뜻인 'BC'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황혼 재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황혼 재혼은 노인 복지 증진을 위한 가장 효과적 수단으로 꼽히기도 한다. 반면 여전히 자식들의 거부감ㆍ재산 상속 등 제도상의 문제 등 때문에 선뜻 재혼을 탐탁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들도 이를 의식해 아직까지는 '데이트' 정도만 생각하고 만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고령화가 진전됨에 따라 황혼 재혼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의식 변화ㆍ제도적 개선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아내를 먼저 보낸 후 몇년간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친구 따라 우연히 집 근처 복지관에 갔다가 교제하고 싶은 상대를 만났다. 이제야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천에 사는 송모(73) 할아버지는 부인 사후 몇년간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게' 살다가 최근 생기를 되찾았다. 복지관을 다니면서부터다. 내성적인 편이라 복지관 가기가 꺼렸지만 막상 가보니 매일 할머니들과 밥도 같이 먹고, 일상 얘기도 하면서 힘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송 할아버지는 "자식들 하고는 같이 살지만 대화도 거의 안 한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긴다는게 이성 교제를 떠나서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며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송 할아버지처럼 노후를 홀로 보내는 사람들이 늘면서 황혼 재혼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70대가 넘어도 성적 능력 등 건강한 데다 재산도 넉넉한 경우엔 자식들에게 당당히 재혼 상대 물색을 요구하기도 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박모(57)씨는 얼마전 명절을 맞아 고향에 홀로 계신 80세 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장가 좀 보내달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집안 살림살이를 맡겨 놓은 50대 후반 도우미 할머니와 결혼하겠다는 통보였다. 박씨는 "돌아 오면서 10년째 혼자 계신 아버지를 너무 방치했구나, 하는 생각에 죄송한 생각도 들었지만 상속이나 가족관계 등 여러가지 파생하는 문제점 때문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통계치를 보더라도 황혼 재혼을 감행하는 이들은 크게 늘었다. 30년간의 국내 재혼 건수를 분석한 통계청 자료 '우리나라의 이혼ㆍ재혼 현황'에 따르면 60대 재혼비율이 1492명(1982년)에서 7168명(2012년)으로 약 5배 증가했다. 전 연령에서 재혼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60대 이상 재혼 비율(6%)이 전체 재혼 비율(12%)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어르신들의 뜻 외에도 노인복지관이나 지자체가 노인복지 증진ㆍ고독사 방지 등의 효과를 목적으로 재혼을 유도하는 것도 한 몫한다. 인천시는 만 60세 이상 싱글 노인들의 인연을 찾아주는 '합독(合獨)'프로그램을 2011년부터 3년간 운영해 왔다. 연천군도 얼마 전 이성 교재 혹은 재혼을 희망하는 노인들을 위한 '두 번째 프로젝트'를 2기 째 운영하고 있는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혼 재혼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추천한 대로 가장 효율적인 노후 복지 증진 수단으로 꼽힌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이 추산한 전국 독거노인 수는 135만명에 달한다. 이중 2014년 노인 자살자는 20대 자살자의 11배가 넘는 6151명이고, 60대 이상 노인 응답자의 10% 이상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 원인으로는 질환, 경제적 어려움에 이어 '사회적 단절 등 외로움'을 꼽았다. 노인들끼리 결합해 서로 노후를 돌봐주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황혼 재혼은 이같은 독거노인들의 고독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휴연 한국실버결연상담센터 대표는 "노인 자살은 기본적으로 노인들이 외롭고 쓸쓸하기 때문"이라며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지만, 꼭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이성친구가 노년의 삶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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