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최초의 한국영화는 1919년에 김도산이 무대 공연과 스크린 상영을 혼합해 만든 연쇄극(連鎖劇) '의리적 구투'다. 이후 6.25전쟁전까지 약 5년 동안 61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당시 영화는 대부분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기쁨과 새 조국 건설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1949년에 만들어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다. 이를 시작으로 이구영 감독의 '안중근 사기', 윤봉춘 감독의 '윤봉길 의사' 등이 개봉됐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영화의 소재는 바뀌었다. 이념과 전쟁이 소재로 등장하면서 영화가 사상교육용에 치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영화데이타베이스(KMDb)에서 '6.25전쟁'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국내영화만 155편이 검색된다. 이렇게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쟁기간에도 영화가 계속 제작됐기 때문이다.
전쟁중이던 1950년부터 1954년에도 40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1954년에 제작된 김홍 감독의 '자유전선'이 대표작이다. 1955년 막을 올린 전창근 감독의 '불사조의 언덕'은 반공주의를 전파했고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은 탐정극 형식으로 실험정신까지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전쟁을 소재로한 영화는 꾸준히 인기소재로 자리잡았다. 강제규 감독이 분단현실을 소재로 만든 쉬리(1998년)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는 '천만관객의 법칙'까지 만들어 내기도 했다.
'호국ㆍ보훈의 달' 인 6월에는 또 다른 전쟁영화가 개봉된다. '제2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연평해전'(6월 11일 개봉)이다. 제2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날,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해군 참수리 357호가 침몰하고, 6명의 전사자와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 영화는 3년 6개월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동료, 연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낸 휴먼감동 실화를 담아냈다.
영화 '연평해전'은 역대 최고 크라우드 펀딩(인터넷 모금)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제작도중 영화사 예산부족으로 촬영이 중단되자 국민들과 해군이 후원에 나서기도 했다. 국민들이 후원한 금액만 8억 6300만원, 해군 가족들이 바자회 등을 통해 후원한 금액도 2억 9200만원이다. 총 11억 5600만원에 달한다. 해군에서도 이 영화 제작을 위해 함정 10여대, 개인화기 35정, 공포탄 5000발, 출연자의 군복 80여벌, 해난구조대(SSU)특수장비를 지원했다.
이 정도면 국민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말이 무성해 우려가 앞선다. '전 해군참모총장 친인척의 출연', '영화제작비에 대한 투명성 미흡', '군작전 실패보다는 미화에 급급한 시나리오' 등 잡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1950년대 영화처럼 반공주의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영화를 통해 조국을 지키다 숨진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위로는 하지 못할 망정, 일부 억측까지 가미된 논란을 만들어 또 다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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