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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 맞은 이명학 고전번역원장…당나라 왕지환의 '등관작루'를 읊으며 고전을 말하다

[이명재 논설위원]
요즘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한 진원지 내지는 표적은 분명 고전(古典)이다. 많은 이들이 '고전을 읽자' '고전이야말로 정신의 양식이다'라고들 얘기한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볼 필요가 있겠다. 고전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일까.


서울 북한산 비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지난 21일 부임 1년을 맞은 이명학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다소 '현학적인 우문(愚問)'을 던졌다. "고전은 풍요로운 지식의 '고(庫)전'이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딱딱한 '고(固)전'이거나 낡은 '고(枯)전'이기 쉬운 게 아닌가." 이 원장은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저는 '고(叩)전'이라고 하고 싶다. '叩'는 '두드린다'는 뜻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꾸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또 지식을 얻겠다는 생각보다 내 삶을 뒤돌아본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접근하면 좋다는 점에서 돌아보다는 뜻의 '顧'를 써서 '고(顧)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더할 나위 없는 정답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답에서 우리의 고전이 처한 현실의 양면이 드러난다. 분명 우리의 정신을 깨워줄 소중한 곳간이지만 오랫동안 단절된 고전을 되살리는 작업은 아직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26년간에 걸친 '조선왕조실록' 완역 등 적잖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번역을 기다리는 문헌들 중 국역이 완료된 것은 겨우, 그것도 많이 잡을 때 10% 정도다. 그럼 흔히 말하듯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고 묻자 이 원장은 "모든 분야의 책들이 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선후가 어디 있겠는가"라면서도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승정원 일기'의 조속한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승정원 일기는 문화콘텐츠의 보고다. 그러나 지금의 번역원 현황으로는 50년 가까이 걸릴 것이다. 한 세대 안에 번역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현 예산이나 인력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승정원 일기'를 꼽아서 말했지만 서둘러 번역하고 싶은 게 그뿐이랴.


"그 외에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집 번역도 중요한데 지금 형편으로는 70여년 걸릴 것 같습니다. 모두 번역이 돼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가치관 등 배울 것들을 배워 우리의 정신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데 일조를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급한 데 비해 번역작업의 속도가 더디기만 한 것은 예산의 부족 문제도 있지만 전문 번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정도 크다.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 때부터의 번역요원 양성 작업을 더욱 확대하는 등 여러 모로 애를 쓰고 있지만 한문 실력과 함께 역사에 대한 지식 등을 종횡으로 엮어야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방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원장은 다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명한 당시(唐詩) '등관작루'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지금 보고 있는 경치에 만족하지 않고 천리 밖 넓은 경치가 보고 싶어 다시 한 층을 더 오른다는 말이다. 현재에 머무르지 말고 부단히 노력해 더 큰 이상과 꿈을 이루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늘 이런 자세로 노력하면서 번역원의 꿈을 이뤄 나갈 작정이다."


이 원장은 원래 고고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그러지 못하고 한문학자가 됐다. 그러나 한문학과 고전번역에로 빗겨간 그의 삶의 이력에선 얼핏 어긋난 듯하면서도 결국은 합치되는 섭리 같은 것이 보인다. 그 자신도 말한다. "한문학은 문학 작품을 다룬다는 점에서 역사를 다루는 고고학과는 좀 다르다. 그런데 한문학도 책장을 넘겨 읽어가다 보면 옛 사람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 같듯이 고고학도 땅속에서 막 꺼낸 유물을 통해 옛 사람을 처음 만난다는 점에서 다를 바는 없는 것 같다."


땅속에서 발굴한 유물이건, 옛 책 속의 말씀이건 박제나 복고로 그쳐서는 진정한 문화재도, 진정한 고전도 아닐 것이다. 그가 고전을 '오래된 새로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옛 고전이 지금에도 고전이기 위해선' 고전을 번역하는 이든, 고전을 읽는 이든 고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길잡이를 해 주는 바가 있다.


"고전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현재 사람들이 배우고 본받을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 선현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분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갔는지 또 그분들은 인생의 가치 중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과 현재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옛것에서 오늘을 사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는 거다."


이 원장과 고전번역원의 연구원들이 캐내고 있는 고전 속의 가치는 일단 우리의 과거를 찾는 것이지만 거기엔 미래의 전망도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고전 읽기는 일종의 '귀소(歸巢)'이자 그 둥지를 넘어설 지혜를 찾는 것일 듯하다. 2년 뒤 서울 은평구에 새 청사가 지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써야 하는 낡은 건물, 이 허름한 건물 앞을 지나칠 때면 이 오래된 건물, 그리고 그보다 오래된 책들 속에 파묻혀 있는 이 건물에서 뭔가 특별한 기운, 그러니까 낡은 것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한 미래를 여는 기운을 느껴봄 직하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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