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로 촉발된 검찰 수사 난항 겪자 1조원 분식회계 겨냥…"독립군 잡던 일제 잔재" 지적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검찰이)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제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 치기 해봐도 또 없으니까 1조원 분식 얘기를 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9일 목숨을 던지기 직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검찰의 수사방식을 놓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른바 '별건수사'로 방향을 틀어 숨통을 죄어오는 형국을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앞서 성 전 회장은 지난달 충남 서산의 모친 묘소에서 추모제를 지낼 때도 이같은 심경을 털어놓았다. 성 전 회장은 "(검찰이) 나를 죽이는 것뿐 아니라 가족들도 다 죽이겠다는 얘기다. 큰아들 활동비에 대해 업무상 횡령죄를 적용하려 하는 걸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별건(別件)수사가 성 전 회장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통한 핵폭풍을 부른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정계 금품로비 정황이 담긴 기록이 공개되면서 정국은 요동치고 있다.
대검찰청은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일부에게 제공한 금품 전달 시점이 2012년 대통령선거 때로 알려지면서 대선자금 수사로 의혹이 확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자원외교' 수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번질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은 가족을 향한 압박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가 경남기업을 중심으로 '자원외교' 수사에 나설 때만 해도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대기업을 겨냥할 때는 수사결과물이 상당부분 축적돼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검찰은 이름도 생소한 '성공불융자금' 비리의혹을 제기하면서 기세를 올렸지만 벽에 부딪히자 '별건'으로 눈을 돌렸다.
별건 수사는 당초 수사하던 혐의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때 수사기관이 별개의 혐의를 끄집어내 수사하는 관행을 말한다. 별건 수사는 일제시대 때 독립군을 잡아들일 때 쓰던 수법이라는 점에서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검찰이 가족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피의자를 압박하면 별건수사 지적은 받겠지만 진술을 끌어내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계속 활용됐다.
이번에도 검찰은 성 전 회장 부인과 아들 등 가족으로 수사대상을 확대했다. 성 전 회장은 검찰이 별건수사의 칼날을 세우자 일단 가족은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권 핵심부 등을 찾아 구명 요청에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명 시도가 여의치 않자 금품 메모 등을 세상에 공개하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3월 검사들에게 "수사에 착수하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고 신속하게 종결함으로써 수사대상자인 사람과 기업을 살리는 수사를 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대기업 총수의 자살 사태로 이어진 경남기업 수사는 검찰총장의 '외과수술 식' 수사 다짐과 역행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관계자는 "수사를 하다 보면 관련된 비리를 같이 살펴봐야 한다. 아들이나 아내 등 친인척 명의로 돈을 움직이는 것은 범죄혐의를 받는 이들의 오래된 수법"이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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