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독자들을 배려해 '군대에서 축구하는' 얘기는 관두고 '축구'만 논해보자. 군대 고참 시절 '오른발 스나이퍼'로 졸병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기억을 되살리고(어찌된 일인지 고참은 모두가 스나이퍼다), 주말마다 두 아들 녀석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는 경험(10살, 8살짜리를 기어이 이기고 마는 쪼잔함이라니)에 입각한 고차원적인 질문이다. 축구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하는 선수들은 주로 어느 쪽으로 공을 찰까?
이스라엘 학자 마이클 바 엘리가 답을 내놨다. 오랜 연구 끝에 선수들의 3분의 1은 중앙으로, 3분의 1은 왼쪽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오른쪽으로 공을 찬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골키퍼는? 그들도 3분의 1씩 반응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절반은 왼쪽, 나머지 절반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중앙에 멈춰 서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왜 그럴까. 그냥 우뚝 선 채 공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느니 어느 쪽이든 몸을 날리는 편이 낫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자동차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나 '초보 운전'이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안정감, 이를 행동 편향(action bias)이라고 한다. 미국 철학자 잭 보웬의 설명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불운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무언가 행동을 하고 나서 불운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보다 더 크다. 불운이나 실패를 겪을지언정 '그래도 최소한 노력은 했잖아'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개념으로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이 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손실보다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손실에 덜 민감한, 다시 말해 움직이지 않았을 때 입는 손해보다 움직였을 때의 손해를 좀더 고려하는 심리다. 축구 경기에서 결정적 순간 심판이 휘슬을 부는 확률이 낮은 것도 그래서다.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경기의 묘미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휘슬과 입술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심판이 행동 편향에 집착한다면? 반대로 골키퍼가 부작위 편향에 중독된다면? 사회도 그렇고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냥 두는 편이 나을 때 나서거나, 당장 나서야 할 문제를 외면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 밀 때와 당길 때를 잘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맹세한다. 오는 주말, 저 쪼잔한 승부욕 따윈 개나 줘버리고 가정의 평화를 회복하겠다고.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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