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은행은 저신용자 금리 대폭 인상, 고신용자 영업 치중
[아시아경제 이장현 기자] 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국고채 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꿈쩍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은행은 저신용자 대출금리를 오히려 올리고 고신용자 대출금리는 낮추는 등 안전한 영업에 몰두했다.
23일 은행연합회 금리공시를 통해 지난해 10월과 12월 판매된 일반신용대출 금리를 비교해 본 결과 17개 은행 중 13개 은행이 대출금리를 0.02~0.23%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2.25%에서 2.00%로 25bp 낮췄고 이 시기 국고채(3년물) 금리는 2%초반에서 하락세를 지속했지만 시중은행 대출금리에는 이런 상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중 5개 은행은 인하폭이 0.08%포인트 이하에 그쳐 사실상 제자리였다. 은행 대출금리는 기준금리, 국고채 외에도 은행 자체 가산금리가 반영되는데 이 가산금리가 오히려 올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시중은행 중 하락하는 기준금리와 가장 동떨어진 움직임을 보인 곳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이었다.
두 외국계 은행의 일반신용대출 인하폭은 각각 0.05%포인트, 0.06%포인트였다. 국책은행 중에서는 IBK기업은행의 대출금리 인하폭이 0.06%포인트로 가장 낮았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제주은행과 경남은행이 각각 0.02%포인트, 0.08%포인트 인하에 그쳤다. 이밖에도 KB국민, 하나, 외환, NH농협, 산업, 대구, 광주, 전북은행이 대출금리를 찔끔 내렸다.
반면, 시중은행 중 대출 평균금리 인하폭이 가장 컸던 곳은 우리은행이었다. 우리은행은 같은 기간 1.12%포인트나 금리를 낮췄다. 여기에는 일부 기업의 우리사주대출 일회성 취급이 늘어난 바가 컸다. 신한은행은 평균 0.37%포인트 내렸고, 부산은행과 수협은행 대출금리도 각각 0.6%포인트, 0.56%포인트 낮아졌다.
일부 은행은 부실위험이 높은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에게는 오히려 금리를 올리고 대신 1∼3등급의 고신용자 금리는 낮춰 안전한 영업을 고집했다.
한국SC은행은 저신용자 대출금리를 0.31%포인트 올리고 고신용자에게는 0.18%포인트 인하했다. 하나은행도 저신용자에겐 0.19%포인트 더 받아 고신용자에게 0.14%포인트 깎아줬다. 농협은행은 저신용자 대출금리를 0.33%포인트 올리고 고신용자에게 0.28%포인트 내려 받았다.
지방은행 중 전북은행은 저신용자 대출금리를 0.93%포인트 올리고 고신용자 대출금리를 0.31%를 내렸다. 제주은행은 저신용자에게 대출금리를 무려 1.65%포인트나 올려 받았는데 고신용자에는 0.27%포인트 내려줬다.
은행들은 저금리 기조가 갈수록 고착화되면서 수익확보를 위해 대출금리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때문에 대출상품의 기준금리에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가산금리를 오히려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연 3%대 예ㆍ적금상품이 실종될 정도로 은행들이 수신금리 인하에는 적극적이면서 대출금리에는 욕심을 부리는 데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대출금리가 시장금리와 동떨어진 채로 운영되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한국금융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금융사와 감독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은행들은 시장금리가 대출금리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소비자의 체감은 그것과 다르다"며 "금리 후행성 극복할 수 있도록 금리결정체계 개선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이장현 기자 insi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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