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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한국의 쟌다르크, 최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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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오늘은 1935년 일제 강점기에 최용신 선생이 스물다섯 짧은 인생을 농촌계몽운동에 쏟아 붓다 안타까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압제에 시달리는 조국 앞에서 개인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온 몸을 던진 그는 쟌다르크를 연상케 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아침]한국의 쟌다르크, 최용신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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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은 심훈의 책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로 잘 알려져 있죠. 이제 그녀의 짧지만 옹골차고 숭고한 삶을 따라가 보죠.

1909년 함경남도 덕원군에서 태어난 최선생은 어릴 적부터 신학문을 배웠으며 이 과정에서 농촌에 들어가 직접 체험하고 실천하는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1928년에는 원산에 있는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수석 졸업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울에 있는 협성신학교에 진학했는데 여기서 독립운동가 황애덕(黃愛德·애스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다니다 가난과 무지로 피폐한 농촌을 접하고는 학업을 중단하고 농촌으로 뛰어듭니다. 마침내 1931년 경기도 화성의 샘골(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YWCA 농촌지도원 자격으로 파견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샘골에는 선교사 밀러(Miller)가 단기 강습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가 다른 곳으로 활동지역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YWCA는 최용신을 파견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야학으로 시작하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지어 한글 교육은 물론 상식과 재봉, 수예 등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또 누에도 치게 하고 유실수와 상록수를 많이 심도록 했죠.


당시 일본은 ‘브나로드 운동’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던 터여서 직간접적인 탄압을 했습니다. 게다가 요시찰 인물인 황애덕의 제자였으니까요.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이 계속되던 1934년 봄. 최용신은 보다 넓은 견문으로 농촌활동을 벌이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나 각기병에 걸려 몸이 쇄약해져 6개월만에 샘골로 돌아 오고맙니다.


주민들의 정성 어린 간호로 회복이 되던 순간 이번에는 그 동안 재정지원을 해오던 YWCA가 지원을 끊겠다는 연락을 해 옵니다. 이 때문인지 최용신의 병세는 악화로 치달았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약혼자와 결혼을 3개월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녀의 무덤은 유언에 따라 샘골에 만들어 졌습니다.


지하철 4호선 상록수 역에는 25년 6개월의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살다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숨진 그녀가 누워 있습니다. 평생 그녀를 흠모했지만 농촌 사랑에 빠진 그녀와 결혼 약속만 한 채 생이별을 했던 약혼자 김학준과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올해는 돌아가신 지 80주년 되는 해라 샘골교회와 안산시가 처음으로 함께 행사를 열고 음악회도 개최한다네요.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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