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체크아웃 불가능한 디플레이션 모텔"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유럽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 자산 규모를 4조5000억유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영국 은행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주장했다.
RBS는 '디플레이션 모텔'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경고하며 ECB가 보유 자산 규모를 두 배로 늘릴 것을 주문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RBS는 유럽의 경제 상황을 체크인은 가능하지만 체크아웃은 불가능한 디플레이션 모텔에 비유했다. 헤어나올 수 없는 디플레이션 위기에 빠져있으니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부양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RBS의 주장대로 ECB가 보유 자산 규모를 4조5000억유로까지 늘리려면 최소 2조3000억유로의 자산을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 이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늘리고 싶다고 밝힌 자산 규모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드라기 총재는 추가 자산 매입과 관련해 ECB의 보유 자산이 사상 최대였던 2012년 초 수준까지 늘리고 싶다고 언급해왔다. 2012년 초 ECB의 보유 자산은 현재 보유 자산보다 1조유로 가량 많은 3조1000억유로 정도였다.
ECB는 오는 22일 올해 첫 번째 통화정책회의를 연다. 시장에서는 ECB가 양적완화 확대를 통해 유로존 국채 매입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로존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동월대비 0.2% 하락해 유로존 경제가 5년여만에 디플레이션에 빠졌기 때문이다.
RBS도 ECB가 자산 매입 대상을 확대해 유로존 국채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첫 번째 단계의 양적완화에서는 자산 매입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CB가 초반부터 공격적인 양적완화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RBS는 1단계 양적완화에서 매월 약 300억유로 규모의 자산 매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이는 이미 양적완화를 실행한 미국, 일본,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 대비 자산 매입 규모를 비교하면 ECB의 양적완화 규모가 미미한 것이라며 거시 경제 흐름에 별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다만 자일리 게일 RBS 금리 투자전략가는 "유로존 핵심 국가의 물가 상승률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면 양적완화 규모가 매우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RBS는 1단계 양적완화가 유럽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세계 경제에는 자산 가격 상승을 지속시킬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원자재와 아시아 자산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매수할 것을 권고했다.
향후 유로존의 디플레이션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앤드류 로버츠 애널리스트는 "향후 몇 개월 동안 유로존 10년물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많은 사례가 나타날 것"이라며 "더 이상 일본화(Japanification)가 아니며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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