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건설업체에 취업한 영관급 예비역 장교의 수가 3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복무기간 군시설을 담당했던 군 장교의 건설업체 취업현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군 시설공사 뇌물수주'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전현직 장교 10여명이 뒷거래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한 가운데 '군피아(군인+마피아)' 수사가 군시설 분야까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3일 군 조사당국이 작성한 영관급 예비역 장교의 건설업체 취업자 명단에 따르면 154개 건설업체에 취업한 영관급 예비역장교는 모두 313명이다. 군별로 육군은 249명, 해군과 공군은 각각 32명을 차지했다. 이들 취업자 중 20%에 해당하는 63명은 임원이다. 특히 25명은 사장으로 영업 등 회사경영에도 직접 관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군 조사당국이 건설업체에 취업한 예비역 장교들의 명단조사에 나선 것은 이들이 최근 군시설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현역군인을 상대로 한 로비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각군 공병병과나 시설관련 부서에서 근무를 하던 장교들이 제대후 취업을 대가로 건설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등 정황은 있었다는 것이 군 조사당국의 판단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서영민 부장검사)도 최근 구속된 육군 장교 출신인 민모(62) 대보그룹 부사장과 장모(51) 대보건설 이사가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현역 장교 10여명을 대상으로 1000만∼2000만원씩 모두 1억5000만원 안팎의 뇌물을 건네려 한 단서를 확보했다. 대보그룹이 경기도 이천의 군 관사뿐만 아니라 파주ㆍ양주 지역 병영시설과 평택 주한미군기지 이전 관련 공사를 따내는 과정에서도 금품로비를 벌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로비대상에 오른 장교들은 국방부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 업체선정에 평가심의위원으로 참여한 현역 군인으로 육ㆍ해ㆍ공군이 모두 포함돼 있다.
지난해에는 국방부 시설본부장 출신 장성이 건설업체에 취업한 후 합동참모본부의 전자기파(EMP) 방호성능을 시공과정에서 하향 조정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합참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2010년 7월 국방부 하도급사에 대한 현장설명에서 합참 신청사의 EMP 방호성능을 100㏈로 계획했으나 시공과정에서 80㏈로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2008년 12월 국방부 화생방 방호시설 설계ㆍ시공 지침에는 '특급방호도 EMP 차폐효율 요구 수준을 최소 100㏈ 이상의 조건에 만족시켜야 한다'고 돼 있다. 또 2011년 5월 시설본부장 박모 소장이 김관진 장관에게 한 보고에서도 "특급(전쟁지도본부)은 핵폭발시 100㏈ 이상 차폐효율 제공"이라고 명시한 것으로 전해했다. 하지만 기술력 문제로 현대건설이 시공과정에서 핵심성능을 하향 조정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박 소장은 퇴임 이후 현대건설 임원으로 취업했다.
군 수사당국은 대보그룹 사건에 연루된 장교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착수하게 되면 건설업체에 취업한 예비역 장교들과 군시설 업무담당자들 간의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군검찰이 합수단에 파견되는 등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사가 흐지부지 끝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군 수사당국 관계자는 "국내 건설업체수가 5만여개가 넘기 때문에 예비역 취업자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3억미만의 시설공사의 경우 각 군에서 알아서 계약을 하기 때문에 대보그룹사건을 토대로 시설관련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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