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준우 기자] 지난해는 국회선진화법이 모처럼 빛을 발한 한 해였다. 새롭게 적용된 예산안 자동부의조항에 따라 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12년 만에 법정기한 내 처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국회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제정됐다. 주요 내용은 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예산안 등의 본회의 자동 부의 및 상임위 자동 상정 안건조정위원회 제도 도입, 안건의 신속처리, 필리버스터링(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이다. 과거처럼 다수당의 날치기식 법안 처리와 이를 제기하기 위한 소수파의 몸싸움 등을 막고 여야 합의에 의한 법안 처리를 하도록 한 것이 국회 선진화법의 취지다.
이 같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선진화법 제정 이후 개정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선진화법 제정을 주도한 새누리당에서 오히려 개정 요구가 먼저 나왔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여야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여당 내에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교섭단체 간 합의 없이는 쟁점법안 상정이 불가능 하다는 점에서 '식물국회'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먼저 제기됐다. 이어 여야 간 쟁점 법안의 경우 과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헌법이 정한 다수결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 여당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1월 중순께 헌법재판소에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특히 지난해 들어 여야가 특정기일까지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되는 조항에 대해 오히려 상임위의 예산 심의권을 무력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에 대해선 야당이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진화법을 과도하게 해석해 의장이 부수법안을 지정해 각 상임위나 조세소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회의장에 오는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편에선 선진화법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으로 여야 갈등이 극에 달했지만, 결과적으로 12년만의 예산안 법정기한 준수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고 세월호 특별법과 부동산 3법 등 일부 경제활성화법안 등 여야 간 첨예한 갈등을 보인 법안들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여야가 국회선진화법 제정 정신에 입각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처리해 나간다면 문제없이 의정활동을 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우여곡절을 많이 겪기는 했지만 결국 여야 간 대결구도에서 대화와 상생의 구도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라며 "(여야가) 이렇게만 한다면 국회선진화법 개정이나 권한쟁의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준우 기자 sowha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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