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서 1년 거주할 기회를 얻게 된 필자는 그 곳에서 참 다채로운 노인들의 삶을 엿보게 됐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미국 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참 노인들이 많았다. 노인들의 모습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색깔로 표현하자면 회색빛이 아니라 분홍빛이었다. (실제 파스텔 톤의 밝은 옷을 많이 입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랬다.) 우리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똑 같은 노인들의 삶인데 우리와 그들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노인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사고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시니어 센터가 있었다. 이곳은 노인들의 사교 장소이기도, 노인들의 배움의 장소이기도, 또 그들의 배움을 필요로 사람들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강좌가 개설돼 있다. 이 강좌의 강사는 노인들이었다. 60대 분도 있지만 70대, 심지어 80대 노인 분들도 있다.
주어진 교제가 있어 영어를 아카데믹하게 배우는 수업이 아니라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다. 그들에게서 미국 문화를 배우고 쉬운 영어 표현을 배운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대학도, 학원도 있지만 이곳이 유난히 인기가 많다. 인생 경험이 많은 그들을 통해 실제 미국인의 삶을,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다른 곳에서보다 훨씬 편하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노인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마트에서 장도 직접 보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기꺼이 봉사하는 삶을 산다. 그들에게 은퇴 이후의 삶은 할 일 다 마치고 죽음을 기다리는 시기가 아닌 또 하나의 독립적인 삶의 시기인 듯 보였다.
둘째, 노인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많다. 큰 대형 마트에는 시니어들을 위한 다양한 무료 잡지가 비치돼 있다. 홈케어 방법, 숙련된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방법, 운동 방법 등 은퇴 이후 건강한 삶을 위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건강, 법률, 주택 등 노인들에게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들도 많다.
시니어 센터 프로그램 또한 참 다양하다. 운동, 다양한 외국어 강좌, 컴퓨터, 공예, 다양한 게임강좌, 영화클럽 등 정말 잘 차려진 밥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노인들의 삶에 있어 가장 큰 화두인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하며 보낼까'를 해결해주는 장치들이다.
미국 인구통계국은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인구를 베이비부머라고 규정짓고 있다. 우리의 산아제한 정책처럼 인위적인 인구 증가에 대한 정책개입이 없었던 미국은 2011년부터 매일 1만명 이상의 베이비부머가 65세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은퇴 이후의 삶이 우리와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보다 재무적 은퇴준비가 잘 되어 있어서 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은퇴 이후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박원주 국제재무설계사, 행복가정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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