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와~ 이거 생각보다 깊네", "아래 안전장치는 설치 돼 있습니까?"
23일 오전 서울시 동대문구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40번 환풍구 앞. 안전점검을 위해 조그맣게 열린 환풍구 덮개 아래를 바라보던 취재진에게서 놀라움의 장탄식이 쏟아졌다. 깊이 14.3m로 최근 사고가 발생한 환풍구보다 4m 높지만 사람이 '위험'을 감지하기에는 충분했다.
지난 17일 16명의 희생자를 낳은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로 환풍구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오는 25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동대문 축제'를 앞두고 인근 환풍구 안전점검에 나선 서울시와 함께 환풍구 안전의 현 주소를 둘러봤다.
◆31년 된 환풍구…5~6년 주기 정밀안전진단 통해 안전성 확보
이날 오전 11시께 도착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40번 환풍구 앞. 2-40번 환풍구의 외관 자체는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풍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1983년 준공돼 지상에서 약 70cm 가량 높은 곳에 설치 된 2.59m×6.26m 크기의 환풍구에서는 지하철 전동차가 역으로 진입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렇다면 안전점검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을까.
시와 서울메트로는 주기적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점검을 통해 유지·보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한배 서울메트로 팀장은 "2달에 한 번씩 육안으로 안전점검을 하며, 5~6년 주기로는 정밀안전진단을 이어가고 있다"며 "물이 새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에는 직접 들어가 보수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안전점검에 동행한 최창식 한양대 교수(시 안전자문위원)도 "통상 유지관리를 잘 할 경우 환풍구의 설계수명은 20~30년 가량 된다"며 "특히 덮개의 경우 이상이 있을 경우 교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풍구 덮개 안전 관련 규정은 없어…"일일이 법으로 통제 못 해"
2-40 환풍구 지붕에 설치된 덮개(스틸 그레이팅·Steel Greating)은 1㎡당 약 350~50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덮개 양 쪽 콘트리트에 턱을 설치해 환풍구 벽으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시 관계자는 "하중이 350~500kg에 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성인 6~7명이 올라가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풍구 안전과 관련한 뚜렷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설계자들이 각자의 재량으로 환풍구 안전을 고려해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 교수는 "통상 환풍구를 설치할 때 구조전문가들이 받게 될 하중·(스틸 그레이팅의) 크기를 고려해 구조를 계산한다"며 "법적으로 이런 규정을 세세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의 설명이 끝나자 안전헬멧을 쓴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이 환풍구 아래로 향했다. 이들은 어두컴컴한 환풍구 아래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점검했다. 최 교수 등 안전자문위원들도 환풍구 덮개 위에 올라 철자로 규격을 재고 녹슨 흔적 등 이상현상이 없는 지를 확인했다.
◆"개인도 조심해야지만, 관리도 잘 해야"
시가 이날 특별히 안전점검에 나선 이유는 이 환풍구 인근에서 25일 'DDP 동대문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역시 사고 환풍기 인근에서 열린 축제로 인해 발생한 것인 만큼, 사전 점검을 통해 이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날도 안전헬멧을 쓴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이 좁은 환풍구 뚜껑을 통해 안팎을 드나들며 점검을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환풍구에는 별다른 경고문이나 안전띠 등이 설치돼 있지는 않았다. 한 켠에 붙어 있는 '관리기관:서울메트로'라는 팻말이 유일하게 이 환풍구가 사람이 서 있을 곳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다른 환풍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 관계자는 "안전점검을 한 이후 경고문 등을 부착해 혹시나 있을 사고 위험을 예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인근을 지나가고 있던 대학생 김모(26)씨는 "그동안 환풍구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있었는데, 사고가 발생하고 보니 곳곳에 환풍구가 눈에 들어온다"며 "일단 개개인이 조심 해야 겠지만 만들 때 부터 튼튼하게 만들고 홍보·관리도 잘 해야 사고를 막지 않을 수 있을까 한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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